천 원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허은아)

천 원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부제: 만 원의 행복 vs. 천 원의 행복)

20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일주일 동안 생활비 만 원으로 고군분투하는 ‘만 원의 행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출연자의 알뜰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획 의도가 큰 인기를 얻었고 6년 가까운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만 원의 행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20년 후 스스로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을 때 막상 맞닥뜨리게 된 것은, 더 이상 그때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면 되는 시청자가 아니라 ‘천 원의 행복’을 찾는 각박한 현실 속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그 ‘천 원의 행복’이 본질적 대안이 아니며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천 원의 행정’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고물가 시대에 얇아진 주머니를 채우는 일을 정부와 학교 등 공동체가 함께 나서서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온 것은 일견 평가할 만한 일이다. 반면, 최근 대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정치권에서 서로 ‘원조’라며 숟가락 얹기부터 시작해 이 정책이 형해화 될까 걱정이 앞선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2030세대에 대한 정치적 구애를 목적으로 ‘원조’를 자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을뿐더러 국민의 공감도 얻기 어렵고 정치권의 천박함만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범사업 예산 편성을 했고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은 맞지만, 진짜 원조를 따지자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천 원 밥상’이라고 불렸던 광주 대인시장의 ‘해뜨는 식당’ 일 것이다.

출처: 한국경제

오히려 정치권에서 우선할 일은, ‘원조’를 자처하며 ‘독보적’ 성과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시작됐던 일을 공적 책임과 역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구애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싶다. 왜 우리가 ‘천 원의 행복’을 찾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냐는 것이다. 분명 20년 전보다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 규모는 수배 이상 커진 데 반해, 왜 각자의 경제 사회적 현실은 점점 더 협소해졌고 불평등과 양극화의 골은 나아지지 않거나 때로는 더 깊어졌을까 하는 지점이다.

출처: 중앙일보

어찌 보면 글로벌 수준의 신자유주의와 고물가, 경제 침체 등 다양한 거시적 변수가 주된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접근 방식으론 주변적 대안 밖에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현실의 무게를 감내하고 있는 국민의 인내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전적으로 세계적 조류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정치가 스스로의 길을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직은 정확히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에 대한 탓을 하기 이전에 지금 이 순간 정치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과거 대선에서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진영의 어젠다라고 생각되던 ‘경제민주화’와 ‘통합의 정치’를 과감하게 내세웠던 적이 있다. 결과적으론 미완의 충격이었고 혁신이었지만,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받았고 보수가 승리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나는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서 그 미완의 목표, 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동일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지점에서의 경제 민주화를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정은 윤석열 정부의 기치이며, 다양한 측면에서 ‘공정한 기회’에 대해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인 우리 국민이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각자가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119조 1항은 제1의 경제원칙으로서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2항은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말하고 있다. 2항에서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지만, 1항의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전제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는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1항과 2항의 가치 조화이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론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모습은 1항에 멈춰 서있고, 2항의 국민경제의 적정한 소득 분배와 경제주체 간 조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또 지금까지 경제민주화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노동권 보장, 시혜적 복지의 모습은 있었지만, 주권자의 권리로서의 복지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국민 개개인의 권리적 복지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바람과 노력에 따라 각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가질 수 있도록 정치가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르게 나눠주는 불안정한 시혜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복지의 권리를 안정적으로 누려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항의 자유시장 경제 원리를 결코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거위의 배를 가르면 그날 밤에는 축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부터는 궁핍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라는 접근을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옛 모습이었고 어느새 잊혀지고 있지만, 국민을 위하고 국민에게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것을 변함없이 조화롭게 지켜나가는 것, 그 길이 바로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다시 20년 후 ‘천 원의 행복’이 잠시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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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정치인들이 방안과 현실적인 미래를 제시해야합니다 또 여러가지 갈등에서 대안을 제시해야합니다 고공행진이 그런 것들을 해결할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2. 이런 말도안되는 거지같은 일시적인 보여주기식 쇼가 옳지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헌법과 경제적 지표 및 그래프를 제공하고 미시적, 거시적 접근을 하고 있는 우리가 슬프다. 그렇지만 이게 내가 알고 배웠던 보수다. 설령 저들이 그래프를 볼 줄 모른다 하더라도!

  3. 개소리 작작 좀 해주세요.
    양심 있으면 조수진 의원에게 사과를 하세요.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 안하고
    상대방 헐뜯는 일을 즐기나요?
    이준석 이라는 놈과 왜 이렇게 비슷하게 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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