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능 완전 상실 (신인규)

정치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다루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대표한 자들이 수임 받은 권한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일정 기간 동안 운영하는 일이다. 정치는 다음 세 가지의 일을 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비전과 대안 제시이고 둘째는 정치적 결정 및 승복이며 셋째는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다. 정치의 최고 정점이자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자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을 반으로 가르고 나누는 지도자는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자격이 없는 자가 지도자가 될 경우 국가는 불행해진다. 지난 문재인 대통령 시절, 우리는 그 괴로움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끊임없는 편가르기로 국민을 적폐와 반적폐로 나누었고 심지어 코로나 국면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를 편가르기도 했다. 임기 5년 동안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했고 지지층이 반대하는 일이라면 움직이지 않았다. 오로지 지지층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일, 지지층이 열광하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 문재인 정권은 무너졌다. 그것이 정치의 본령이 사라진 정치를 한 대가였다.

정치의 첫 번째 기능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보이는가. 간혹 그런 정치인이 있기는 하겠지만 언론 환경에서 결코 주목을 받지 못한다. 당 내에서도 묵묵하게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정치인은 빛을 못 본다. 정치가 극단화되어 있고 지나치게 정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묵묵하게 일하면 무조건 낙선이다. 반대로 일은 안 하고 정쟁만 일삼으면 공천을 받고 또 당선이 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언론에서도 막말한 정치인을 보도할 뿐 묵묵하게 미래의 비전과 대안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가 실종된 이유 중 하나이다.

둘째는 정치적 결정이 사라진 모습이다. 정치는 권위를 바탕으로 갈등 국면 속에서 일정한 결정을 내리는 기능을 담당한다.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엔 승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정치적 결정에 대해 끊임없는 불복으로 정쟁만 일삼고 있다. 대선에서 져도 그 후보가 또다시 당대표가 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대해 대선 불복 아니냐며 공격을 하고 있고 민주당은 총선 불복 아니냐며 국회를 존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대선 불복이나 총선 불복이나 본질은 같다. 정치의 사망이다. 심지어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할 사법부의 결정까지 정쟁화되고 있다. 입으로는 사법부를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사법부 판단을 뒤집으려 한다. 과거엔 사법부 부정이 민주당의 전유물로서 나쁜 습관이었는데 최근에는 국민의힘도 전염을 당한 모양이다. 내로남불로 민주당의 위선을 공격했던 국민의힘으로서는 사법 부정에 들어간 모습이 매우 볼썽사납고 미련하다. 민주당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놓을 수 있었는데 이젠 둘 다 똑같은 ‘사법 부정당’이라는 오명을 같이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통합 기능의 상실이다. 정치인들이 비전과 대안을 잊은 채 지나친 정쟁에만 몰두하면서 싸움의 내용이 사라졌다. 마치 동네에서 누가 나이가 많은 지로 싸우는 개싸움을 보는 것 같다. 나이 가지고 싸우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적 불복만 난무하고 있다. 사법부까지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해야만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통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겠는가. 국민들 속에서 갈등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치가 국민적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재생산하기만 하고 갈등과 분열을 방치 또는 조장하고 있다. 이렇게 가서는 정치가 본령을 잊었다는 비판에 덧붙여 정치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정치적 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비극이다. 이런 사회에 남은 것은 공멸뿐이다.

나는 대한민국 위기 사회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초저출산 문제를 비롯해서 가장 높은 자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청년들은 삶의 기본적 욕구를 채우지 못해 미래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노인은 자신의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불안에 떨고 있다. 중년 세대는 양쪽에 끼어서 하루하루를 책임감으로 채우며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양 극단의 비합리적 세력에 붙들려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로 퇴행되어도 한참 뒤로 가버렸다. 정치가 실종을 넘어 사망으로 간 까닭이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비전과 대안이 없이 집권을 했고 5년 동안 검찰 개혁만 떠들다가 결국 검찰 개혁도 실패했고 부동산 정책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국민의힘 역시 아무런 비전과 대안을 제안하지 못했고 5년간 폭주하던 문재인 정권을 막았을 뿐 아무런 아젠다를 내세운 것이 없다. 지금도 노동, 연금, 교육 개혁안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비전과 대안이 없으니 매일 싸우기에만 급급하다. 싸움을 잘하는 나쁜 정치인들은 오늘도 언론 지면의 탑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제22대 국회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린 지금 공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답답하다. 요즘은 20대도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기성세대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나 역시 이제 30대 후반이다. 사회에 진입해서 우리나라의 근본을 들여다보니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결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치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뿌리 깊은 구조적 악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식이나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는 말이 귀에 맴돈다. 지금 정치권에 꼭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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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문득 30여넌전의 TV프로가 생각이 난다. 지금의 중년층이 봤을

    것인데 프로그램 이름은 이수만이 진행했던 ‘이야기 쑈 만남’

    기억에는 MBC프로였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시급하게 수입해야할

    것 중에 1위가 정치인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중이었고

    그걸 보고 자란 20대 30대들이 지금의 기득권 일텐데..

    싸움만하고 국민들은 하나의 표로만 생각하는 ㅠㅠ

    다른건 다 발전하고 진화했는데 정치만 제자리인것 같아

    비오는 날 씁쓸하기만 하다.

  2. 한숨만 나오네요.. 묵묵히 길을 걷는 그대들이 있어 희망을 가집니다

  3. 이념을 너무 종교화시켰기때문이죠…그들만의 보수, 그들만의 진보
    누구누구를 지키면 보수는산다 누구누구를 쳐내면 보수는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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