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갤 비극적 사태가 어른들에게 외친다
위로가 되는, 듣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도 관찰자일 것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증갤러리'(울갤)에서 활동하던 어느 10대의 극단적 선택이 SNS로 생중계 방송되면서, 경찰 수사와 함께, 해당 사이트의 폐해와 폐쇄 논란부터 우울증과 자살 통계, 심리적·의학적 원인 분석 등등 1020 세대의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에 대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그 사회적 이목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것에 더한 나의 어떤 위로와 어떤 공감도 그들이 마주했을 고통에 쉽사리 닿기 어렵기에, 그들에게는 관찰자 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20대 때 우울증 당사자였다. 20대에 결혼해 첫아이를 유산한 후 난임이 됐을 때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흐린 날보다 맑은 날에 거리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특히 더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라떼’는 이랬다며 섣부른 충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이의 숫자로는 어른이면서도, 1020 세대의 고통을 나누지 못했던 어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기 고백을 말하고 싶고, 자기 다짐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듣는(廳) 관찰자이고자 한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듣는 어른이고 싶다.
물론 모방효과 때문에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낫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주제라는 통념도 있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다.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은 ‘한 아이를 키울 때’만이 아니라 한 아이를 지킬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믿기 때문이다.
위로가 되는, 듣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섬은 ‘정원의 섬’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휴양지이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가난과 질병, 범죄가 난무해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사회학자들이 전쟁 직후 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55명 중 가장 열악한 여건에서 성장한 소위 ‘고위험군’ 201명의 삶을 50여 년간 추적 조사하는 종단연구를 했는데, 당초 연구진들 대부분은 이 ‘고위험군’ 아이들이 사회 부적응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틀렸다. 아이들 중 30~4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좋은 환경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에 못지않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아이들의 주변에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이해해 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최소한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 방조나 성범죄 노출, 약물 오남용 유인 등 울갤의 폐해는 반드시 시정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왜 1020 세대들이 울갤을 만들었고 모였는지, 왜 울갤을 통해 그런 비극적 선택이 반복되는지 또한,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
왜, 1020 세대들의 비극적 선택이 반복되는지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가족과 학교, 친구 등 가장 가까운 주변과 단절된 극단적 고립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로서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고 그곳으로 모인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힘겨운 몸부림일 수 있는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오프라인 만남이 쉽게 이뤄지고 상대방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절망 끝에 찾은 곳에서 또 다른 절망을 만나는 일이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국가 공동체 차원의 제도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정부의 ‘자살 예방 기본 대책’이 올해로 5회차가 됐고 중앙자살예방센터도 만들어졌다. 국회에서도 자살예방법이 통과됐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자살 보도 권고 기준’도 강화되고 있다. 전문 상담사와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전화, 모바일, SNS 등 24시간 상담 시스템도 만들어졌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 제도가 우리의 현실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있다. 전체 자살률은 2011년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인데, 1020 세대에서만 늘고 있다. 2017~2021년 20대 자살률은 10만 명당 16.4명에서 23.5명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10대에서는 4.7명에서 7.1명으로 늘었다.

입시에서의 치열한 경쟁 환경, SNS 의존과 비교 과시하는 물질 중심 풍조에서 겪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 등 다양한 원인들이 지목되지만, 하나의 공통된 점은 어떤 원인에서 시작되었든 극단적 고립 상태에서 우울증을 겪고 심리적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 각각의 개별적 대안들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극단적 고립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방향을 비껴갈 수 있도록, 절망을 겪는 1020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가 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다. 마치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미국 하와이 섬의 아이들에게 있었던, 최소한 한 명의 ‘어른’처럼 말이다.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제도 마련 시급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제도 측면에서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지자체 차원의 온라인 고민 소통 공간, 일명 온라인 ‘한마을 모범택시’를 제안한다. 1020 세대가 거부감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익숙한 온라인 공간에서 상호 익명성이 보장되면서도 사회·경제·문화적 유사성에 따라 공감대를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하되, 드라마 ‘모범택시’에서처럼 절망에 빠진 그들이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말이라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기존 제도들도 그 역할을 일정 정도 해내고는 있지만, 회원 가입이나 전화번호 노출 없이도 위로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마을 모범택시’가 가짜 상담 등 행정 비용 낭비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절망에 빠진 1020 세대 중 만약 한 사람이라도 더 지켜낼 수 있다면, 행정 비용 누수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국민에게서 모은 세금은, 국민을 지키라고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문화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 고(告)하며 스스로도 다짐한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울감과 고통을 말하는 1020 세대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이나 열심히 해라’는 말을 하기에 앞서, 입시 때문에 편의점에서 급하게 끼니를 때우지 않도록 밥 먹는 시간이라도 맘 편하게, 존중해야 하는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1020 세대의 삶 속에는, 이해하고 듣는 어른은 부족하거나 부재중이다.
똑같이 그 시절을 보냈다면서 ‘완장’처럼 어른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똑같이 아팠던 기억으로, 1020 세대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고통을 들어야 한다.
1020 세대가 혹시라도 삶 속에서 절망의 ‘늪’을 겪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제는 울갤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인 ‘한마을’ 안에서 먼저 더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듣는 어른의 자리를 지키려 한다.
7 comments
허은아 국회의원을 항상 응원합니다.
작금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마음 변치 않고, 감사한 응원 받음이 부끄럽지 않게 의정활동 하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고민을 하면서 길을 열어가는 국회의원이 누가있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국민을 위한 허의원님 늘 응원합니다
국민 마음을 이해하는 국민과 닮은 국회의원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은아 국회의원님, 의미있는 글을 써주셔서 국민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이 잘 드러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안하신 정책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마을 모범택시’는 기존의 상담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각 지자체 단위로 진행하기에 말씀하신대로 지역문화에서 기반한 동일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각 지자체에서 ‘한마을 모범택시’를 진행하고,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면서 전문 상담자가 아닌 지역 구성원을 상담자로 참여하도록 할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됩니다.
우선 익명성의 문제는 말 안 해도 아실거고,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던지는 말들이 당사자들에게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아실겁니다. 그래서 전문 상담사가 있는 것이고요.
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제 2의 우을증 갤러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범죄자들이 노리는 타깃이 됩니다. 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나 우울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오히려 서로의 소통으로 그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관리를 잘 하면 될 일이지만 지자체가 워낙 많으니 모두 제대로 관리될지 걱정이 됩니다.
혹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대책이 있었다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행정 비용을 아껴서 더 효율적인 정책으로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건데, ‘행정 비용 누수야 무슨 문제?’라든가 이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감성에 호소하여 정책을 통과시키면 결국 ‘정책을 위한 정책’이 되는거죠.
제 자신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노력하고 계신 의원님께 이런식으로 얕은 비판이나 하는게 부끄럽습니다만, 오히려 국민으로서 이렇게 의견을 표시하는게 의원님과 개혁 보수 세력, 국가에 더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고 댓글 남겨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국민의 대표로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
꺾쇠 괄호를 사용한 부분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네요.
경우에 따라서는 ‘한마을 모범택시’가 가짜 상담 등 행정 비용 낭비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절망에 빠진 1020 세대 중 만약 한 사람이라도 더 지켜낼 수 있다면, 행정 비용 누수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국민에게서 모은 세금은, 국민을 지키라고 모으는 것이다.
이 부분이였습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말씀주셔 감사합니다.
더 많은 고민과 관심으로 다가가 접근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주신 지적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입법기관으로서 정부가 ‘행정비용’ 운운하면서 이 사안에 접근하려 하지 말라고 견제하려는 의도를 담은 대목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정부는 정책 예산에 민감한 기관이라서요.
하지만 말씀주신 세심한 부분까지도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