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방송 수난 시대 (이준석)

최근에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라는 곳에서 방송 패널을 보수에 우호적인 패널과 비우호적인 패널로 구분해서 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살펴보니 그 명단이 그다지 권위가 있거나 의미가 있는 명단은 아니다. 분류의 기준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김종인 위원장은 당 상황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으로 논평하지만 우호적 패널로 분류되어 있고, 정작 보수성향이 매우 강한 이언주 의원이나 장성철 소장은 비우호적 패널로 구분해 놓았다. 이 명단이 그런데 당으로 넘어와서 미디어 특위라는 곳에서 방송사에 시정을 촉구하는 성명까지 냈다. 결국 이 명단이 당과의 연계속에서 생성되었다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명단의 작성자가 상대적으로 이언주 의원과 장성철 소장은 만만히 보고 김종인 위원장은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에서 이런 일을 주관하는 것은 미디어 국이고, 그들은 언젠가 그들이 마주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김종인 위원장을 적으로 돌리는 큰 무리수까지는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이런 명단을 만들어서 공개하고,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려는 것일까?

민주당을 무지성 옹호하던 그 패널들이 그렇게 그리운가?

YTN 썸네일

민주당은 초기에 종편 출범에 반대해 종편 패널 출연을 보이콧했다. 우선 그 당시 언론을 가려서 자기들 나름대로 출연의 유불리를 따진 민주당의 행태는 유치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그런 보이콧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할 기회를 잃어버린 탓에 선거를 졌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후로는 민주당 쪽의 입장을 그대로 방송에 나와 풀어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뒤늦게 보이콧을 풀기도 했지만, 방송사에 거대정당으로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출연자들을 내보내기 위한 나름의 물밑 작업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보수층에서 매번 욕하면서 방송에서 봤을 김남국 변호사, 이경 부대변인 등의 패널진이 그렇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보수는 그게 부러웠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탓하면서 그들이 했던 패널 할당제를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유’라는 말을 과도할 정도로까지 입에 달고 사는 정권에서 방송사와 프로그램 진행자의 패널 구성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 같다. 

이언주 의원과 장성철 소장 정도를 적대시할 정도면 국민의힘이 보수로 인정하는 스펙트럼은 이제 좁아진 것이 매우 확실하다. 사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르고 있으면 무작위로 방송 패널을 추출해 놓는다고 해도, 정부·여당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가진 패널들이 60% 이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리얼미터 등의 조사를 보면 현 정권에 대해 “매우 잘함” 정도의 평가를 하는 사람은 전 인구의 15% 남짓하다. 이것이 민심을 나타내는 척도라면, 국민의힘에서 최근 패널 분류 공문을 통해 원하는 것은 패널 구성에 있어서 자연 비율을 넘어서 “옹호 패널”로 할당제를 하자는 것이다.

인기 진행자들도 바뀌고 있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은 SBS를 대표하는 장수 시사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 타이틀에 진행자의 이름이 들어갈 정도로 진행자가 곧 히트상품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진행자가 교체되었고, 공교롭게도 그 뒤를 이어 광주방송 KBC의 <백운기의 시사 1번지>도 진행자가 교체되었다. 나도 방송 생활을 많이 해봤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고 인기가 없는 프로그램이 개편되고 진행자가 교체되는 것은 일상다반사이지만 두 민영 방송사가 잘나가는 대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비슷한 시기에 교체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언론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윤창중과 이도운

채널A 방송 캡처

그렇다면 현 정권에서 선호하는 패널 상은 어떤 것일까? 

박근혜 정부의 초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후보를 적극적으로 방송에서 옹호했다. 선거가 끝나고 그는 자신이 정부에서 일을 맡아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모독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던 그가 대변인으로 발탁되었을 때 그가 그때까지 보였던 방송에서의 모습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재평가받은 것은 당연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대변인으로 최근에 발탁되었다. 그가 방송패널로 나와 노골적으로 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의 역성을 들면서 했던 평론이 윤창중 씨가 걸었던 길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둘 다 같은 언론사의 논설위원 출신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들이라면 비판의 고수들인데 이도운 씨가 패널로 활동하던 시절 윤석열 후보나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이나 개선점을 짚어낸 것을 보지 못했다. 그 능력을 오롯이 해가 비치는 한방향으로만 사용했다. 

퇴직을 앞둔 언론인에게 대통령실의 대변인이나 홍보수석 자리는 엄청난 영전의 기회이고, 명쾌한 신호를 보여줬기 때문에 앞으로 그 길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이 더 생길 것이다.  

작가의 선호

우리나라의 방송 현실에서 PD와 출연자보다 작가는 못 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게 되다 보니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다. 출연자의 섭외 같은 경우도 작가의 일이고, 매일매일 주제가 바뀌는 시사 방송의 특성상 작가가 적재적소에 필요한 출연자들을 찾아서 섭외하고 배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아침 라디오만 해도 4~5개 방송국이 경쟁하다 보니 이 섭외전쟁은 매우 치열하고 섭외 시에 주제나 상대 출연자를 놓고 까다롭게 굴지 않는 출연자가 당연히 작가들에게 선호 받게 된다. 위에 상술한 이유로 보수진영의 패널들은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나, 누군가에게 밉보일만한 상황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작가들 입장에서는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보다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어떤 상대방과도 편하게 소통하면서 방송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게 된다. 

사실 방송작가들은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보수진영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그들이 특별한 편향성을 띤다기보다는 20대부터 40대 정도의 여성이 주로 활동하는 방송작가의 세계에서, 그 세대가 보여주는 이념적 성향 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고 결국 자신과 이념적으로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합리적으로 말을 풀어내는 패널들과는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정부를 비판하고 혹여나 영부인에 대한 주제라도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할 말을 하지 못하는 패널들과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작가와 제작진이 있을까? 

방송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패널의 발굴

2021년 전당대회 이후 바로 시작되었던 대변인단 선발 토론배틀이었던 의 추진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을 대변할 수 있는 언변을 갖춘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실력을 기반으로 선발된 이들은 주관방송사였던 TV조선에서 그 실력을 익히 알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방송패널로 안착했고, 누구보다 사심 없이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평론했기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중은 얼마나 당에 맹종하느냐를 가지고 패널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인 평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고, 그런 신선한 패널들의 선보이는 미래를 바라보며 당을 응원했다. 

시사 패널을 하는 데에 있어서 으뜸가는 덕목은 물론 방송 실력이다. 방송에서의 실력이란, 시청률을 높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고 상업화된 방송 시간의 경쟁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지표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시사평론에 있어서 시청률을 좌우하는 요소는 당연히 화술과 개인의 개성이다. 하지만 얼마나 넓은 청자층을 대상으로 하는지도 중요하다. 정당의 지지율처럼 시청률도 확장성에 의해서 최대치가 좌우된다.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의 시청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지가 시사패널에게는 중요하다. 

최근에 김기현 지도부에서 대변인단을 부지기수로 늘려 놓았던데, 그들 중에서 과연 방송에 나가서 무당층에 가까운 유권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당의 득표 지형을 조금이라도 늘려나갈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바보야 문제는 언론이 아니야”

최근 들어 당에서 네이버 뉴스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에 대해서 강도 높은 지적을 하는 것이나, 패널 구성에 있어서 나름의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언론사를 압박하는 것은 누가 말하고 다니던 “가짜 보수”, “진짜 보수”로 스펙트럼을 나누어 지형을 좁혀 들어가겠다는 이야기이고, 갈라파고스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안주하겠다는 의도이다. 정부에 대한 평가가 냉혹한데 패널들이 지상파나 종편 시사 방송에 나와서 용비어천가를 부른다고 평가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할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오직 정부의 일하는 모습, 정책으로 민생을 살피고 희망을 심는 것에 주력하고 언론 길들이기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이 총선 승리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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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1. 점점더 극단 좌우로 가는것 같습니다 그것을 똑바로 잡아야 할 당이 이 모양이니 정말 답답합니다.

    1. 책 잘읽어봤습니다. 정치는 참먼나라 이야기인데, 나라가 걱정되어 자꾸만 들여다보게되네요. 나라가 빨리 안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극단적으로 말해서 국정 지지율이 30%라면 패널 열명을 무작위로 섭외했을 때 평균적으로 3명은 우호적인 목소리가, 7명은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힘에서 이념 성향별 명단으로 방송사에 압박주는 건 오히려 3:7이 아닌 ‘우호적/비판적 인사 1대 1 할당제’를 하자는 얘기다. 국민들은 북한식 찬양 프로파간다를 보고싶어서 방송을 보는 게 아니다. 현 상황을 평론하면서 잘한건 잘했다고 칭찬하되, 못한건 못했다고 지적하고 반성하면서 ‘개선’되는 현실을 원하는 거다. 여당 패널이라면 무조건 찬양해야 되는가? 야당 패널이라면 무조건 비판해야 되는가? 국민들이 진영논리에 갇힐 수 있을진 몰라도 국가의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으로 국가를 운영하면 국민들만 불행해진다. 국정 지지율이 꼴아박지 않도록 쓴소리를 주는 게 여당의 역할이고, 애초에 국정 운영을 잘해서 우호적인 목소리가 7이 나올 수 있게끔 해야 맞는 게 아닌가? 용비어천가를 부르면 영전하고(공정) 방송 진행자들을 입맛에 맞게 갈아치우고(상식)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여당 패널을 못쓰게끔 방송사를 압박하는 행태(자유)를 보면서 공정, 상식, 자유 이따구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그 위대한 단어들이 그렇게 공허하게 소비될 단순한 단어들이 아닌데 말이다.

  3. 정확한 분석 감사합니다 누가당을 위해 할말하는지
    알지못하는 사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어 이 정부가 걱정입니다

  4. 하루아침에 이유도 변명도 없이
    시사프로그램을 바꾸는 처사
    방송이 나라가 망하려는 징조다
    정권 입맛에 따라다니는 언론
    남길것 뭐가 있겠나?
    이제 그만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를 향해 올바른길 찾기를
    그리고 세계를 넘나드는 일만 하기를

  5. 이런식의 언론 길들이기를 한다고 해서 국민까지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특히나 주영진 앵커 하차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네이버 알고리즘따위를 탓하며 눈치보기 급급한 여당의 모습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이네요. 다소 뻔하고 유지한 언론 탄압 사태에 관해 대표님의 의견이 너무 궁금 하곤 했었는데, 라디오에서도 잘 말씀을 안해주셔서… 그런데 글이 올라오니 반가왔습니다. 요 몇일 라디오가 뜸 하시니 기다려집니다…… 순천만 예뻐하지 마시구 상경 많이 해주세요♡

  6. 진짜 주영진 앵커 잘리고 다음에 온놈 보고 참 가관이더라

    우파편향적인 버러지임

    어이없는 자유임 윤석열아 총선 때 보자

  7. [시민과의 대화], 이런 일정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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