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으로의 정치 (김용태)

“표 얻으려 하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라는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의 농담 한마디는 후배 정치인으로서 기분이 불쾌하다.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라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 내용 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정치인 스스로 품격과 품위를 떨어뜨리는 발언은 정치를 대하는 진정성이 다른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정치를 시작할 때, 선배 정치인들은 필자에게 “간과 쓸개도 내어주는 것이 정치인이다”라며 가끔 농담을 던졌지만, 필자는 이 농담이 정치인 스스로 정치꾼으로 행동하려는 것 같아 듣기 싫었다.

“일단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고 봐야 하지 않나”, “선거에서 승리해야 원하는 개혁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에 일부 동의하지만, 전제 조건은 정치인 각자가 세운 “원칙 있는 승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측의 입장에서도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입장을 좁혀나가는 일종의 타협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스스로 가치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타협에 임할 때, 거래의 대상으로 쓰일 수 없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우선순위의 가치가 정치인마다 있을 것이며 그 가치는 맞서 싸워서라도 지켜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가치는 대의를 위해 협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이나 ‘표’를 얻기 위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조차 버리고 무조건 타협에 임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치꾼”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내세우는 가치를 하나도 양보하지 못하고 타협에 임하는 것조차 비난하는 정치인을 보고 흔히 “뺄셈 정치”라고 부른다. 유권자가 바라는 좋은 정치인은 “정치꾼”과 “뺄셈 정치”의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을 즐겨봤다. 드라마에서 뉴햄프셔 주지사 출신의 바틀렛은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기 위해 뉴햄프셔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던 중 바틀렛을 지지했던 한 낙농업자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바틀렛을 주지사로 당선시키기 위해 여러 번 투표했지만, 정작 바틀렛은 뉴햄프셔의 낙농업을 지원하는 사업에 반대했고 낙농업계의 손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바틀렛은 “어린이가 미국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받은 우윳값이 낙농업자의 이익과 우유 구입에 부담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다른 선택을 기대한다면 다른 후보자를 찍어야 할 것”이라며 소신을 답한다.

필자도 소신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때로는 기득권에 반할지라도 말이다.

0 Shares:
8 comments
  1. 변하디말고 지금처럼 소신있게 뚜벅뚜벅 나가시길.. 묵묵히 응원하겠습니다

  2. 웨스트윙 오늘 한번 시청해 봐야겠습니다. 예전처럼 숨어서 장소 사람에따라 이랬다 저랬다 말바꾸는 정치는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게 기록되고 평생 따라다닐 겁니다. 김용태최고위원은 10년뒤, 20년뒤에 한결같던 정치인으로 저희곁에 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다는거 압니다. 그렇지만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는거 알아주셨습면 고맙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3. 최고위원 끝까지 남아있던 김용태 응원합니다. 의리남 화이팅

  4. 소신을 지키겠다는 용태님의 지금의 결심은 미래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을 위해 미래를 자살한 여타 구태 젊은 정치인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들이 기록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5. 모든이가 투표용지를 보고 기권하고 싶지않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