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이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김용태)

같은 회사 모델의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해도 국가별 공장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주요국 탄소중립 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화력발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아시아 지역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가 비교적 오랜 기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한 유럽 지역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에 비해 평균 탄소 배출량이 20%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탄소를 다루는 기술’이 ‘경제 패권’을 주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을 통해 일찌감치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개도국 보다 먼저 에너지 전환을 시작한 선진국들이 ‘탄소’를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헤게모니 싸움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탄소 국경 조정 제도’가 시행될 경우 대미, 대유럽 수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대한민국은 ‘탄소중립’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보수정권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에너지 정책을 접할 때면, 대학원 첫 학기 지도교수 수업의 중간고사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정부의 에너지 정책 책임자라면, 중장기 에너지 믹스를 제시하라’였다. 언뜻 쉬운 문제인 것 같지만,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 안보,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주민 수용성, 산업 구조와의 연관성 등을 근거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종합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다. 학생들마다 생각하는 에너지 믹스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각자가 근거한 합리적인 원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실패했다. ‘탈석탄’과 ‘탈원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조로 당시에도 전문가들의 비판이 많았지만 듣지 않았다.

2022년 브리티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 세계 에너지 통계 분석 자료를 단순 계산해도 2021년 기준 대한민국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 약 35.3%, LNG 약 29.7%, 원전 약 26.3%, 신재생에너지 6.7%이다. 깨끗한 청정에너지 사용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전세계적 흐름이었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 대선 후보 시절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여러 차례 공약한 바 있다. 2019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메트릭스코퍼레이션에 의뢰한 ‘2019년 에너지 국민인식조사’에서 일반 국민의 78%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찬성을 했다는 것은 국민 생각도 대체로 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발전원별 에너지원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을 줄이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발전원별 단가가 낮은 원전을 정치적 갈라치기에 이용하면서 에너지 정책 실패로 이어졌다. 최근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의 ‘탈원정책의 비용평가’에 따르면, 2017년~2022년 기간 22.9조의 비용이 발생했다고 한다. 2023년~2030년 동안 24.5조가 추가로 발생해 총 47.4조 원의 비용을 추정했다고 밝혔다. 노후 석탄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발전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 발전량의 보완을 원전을 통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공사 중인 원전까지 중단하는 등 비현실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CF100(Carbon Free 100%) 등 원전을 강조한 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이라고 전문가들은 대체로 생각한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확대했던 정책은 보수정권에서도 관심 갖고 이어가야 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산업 통상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치의 연구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에너지원을 정치 지지층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은 필요하고, 신재생에너지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고 보수정당이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대선 토론 기간 주목받았던 RE100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아 RE100이 당장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많은 회사들이 RE100을 선언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플을 비롯한 전세계 수백여 개의 기업들이 RE100을 선언했고, 협력업체에도 RE100 이행을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계약 취소 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5일 자 한국경제가 단독으로 보도한 “유럽發 ‘RE100의 공습’…녹색 보호주의에 궁지 몰린 韓 부품사”라는 기사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 볼보社의 국내 협력업체는 RE100 이행이 어려워지면서 볼보社와 납품 계약이 무산됐고, BMW社·다임러벤츠社 역시 국내 협력업체에 RE100 이행 요구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이러한 요구는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는 CF100을 내세워 RE100을 대체할 전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려 하겠지만,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대체의 역할이 아닌 보완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온 선진국들이 탄소를 무역 장벽으로 내세워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는 와중에 이들이 대한민국의 사정을 봐줄 가능성은 적다. 그래서 보수정권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요 7개국과 비교해도 대한민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부족하다. 보수정권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현실성 있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통해 이뤄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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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기업에서도 친환경, 탄소배출을 줄인 제품을 출시하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런 제품은) 제품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고객 반응이 미약하기는 합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홍보, 선점이 필요할듯 합니다

  2. 원전은 필요하고, 신재생에너지는 비효율적 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고 보수정당이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부분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난민국이 되지 않도록 보수가 선두에서서 에너지 정책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김용태님 늘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3. 좌건 우건 정책의 합리적 접근이 아닌 이념적 접근을 우선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이 나라의 근 2~30년 사이의 성공적인 중장기 정책이 보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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