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치주의를 막으려면 정치복원 외에는 답이 없다(신인규)

여의도는 정치의 상징인 장소이다. 통상 정치 1번지라고 하면 서울 종로를 떠올리지만 결국 정치가 실제 행해지는 곳은 단언컨대 여의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치의 상징인 여의도에서 정치가 사라졌다. 이젠 정치 실종을 넘어 정치 사망의 단계이다. 여야 간의 대화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일 뿐 아니라 정치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강 대 강강대강 대치에 이어 대선의 연장전을 지금까지도 뛰고 있다.

통상 정치의 3기 능이라3기능이라 하면 1) 의견수렴을 통한 국민통합, 2) 창조적 대안 제시를 통한 문제해결, 3)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안에서 정치의 영역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다툼 없는 사실이다. 정치 무능의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매우 비극적이다.

정치 사망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어 고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치개혁과 혁신은 ‘자기반성과 희생’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필자는 정치 사망의 근본적 원인으로 반정치주의를 지목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반정치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치를 무너뜨렸고 끝내 대한민국 정치를 사망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정치가 사망하면 대한민국 공동체가 죽는다. 정치의 부재는 공동체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반정치주의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우선 반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전체주의 또는 독재로 부를 수 있는데 반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반대한다. 반정치주의의 기저에는 나만 옳다는 식의 오만과 독선이 깔려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는 반정치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회는 지난 10년간 동물 국회와 식물국회를 번갈아 경험했으며 지금은 무능과 무책임 국회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란 곳이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만 할 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정치의 부재가 일상화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담하고미래는 암담하고 정치는 뒷걸음질 친 지도 오래다. 결국 대한민국 공동체가 반정치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정치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바로, 이 반정치주의가 대한민국 정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이다. 반정치주의는 정치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여 그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삼아 정치 세력화를 시도한다. 한번 형성된 반정치주의의 흐름을 끊어내고 정치를 복원하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정치 불신형의 반정치주의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로 나눌 수 있다. 즉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는 사라지고 사법의 잣대가 불쑥 들어온 것이다. 정치 사법화의 전형은 바로 검찰에 의한 정치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영역에 검사들이 들어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결과이고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권한과 결정에 대해 정치가 정면으로 도전하여 사법부의 독립성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 모두 반정치주의의 하부유형으로 정치검찰의 대활약 시대를 활짝 열어주었다.

과거 정치의 사법화는 국민의힘의 전유물이고 사법의 정치화는 더불어민주당의 전공과목이었으나 최근에는 그 경계마저 모호할 정도로 정치 불신형 반정치주의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양당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정치적 에너지로 사용해 오면서 정치 실종을 부추겨 오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로 해결할 것을 사법의 잣대로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에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 많기도 하거니와 결국에는 검찰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는데 이르렀다.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민주당의 전유물인데 요즘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여야 모두 사법적 결정에 대해 진영의 이익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편향성이란 잣대로 프레임을 잡아서 자기 진영에 유리한 판결만 인정하려 든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단이 나오면 바로 사법부에 대해 정치적 색깔을 입히는 방식을 사용한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재판이나 이준석 전 대표 가처분에 대한 판결을 대하는 정치권의 아전인수 격 해석을 바라보고 있자면 사법의 정치화가 매우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존중은 무너지고 더 이상 민주주의는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이러한 정치 불신형 반정치주의는 정치의 실종을 낳았고 정치를 사법의 장으로 만들었다. 바야흐로 검사정치 전성시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정치권력 스스로 정치를 퇴출하는 방식으로 자해 정치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정치권력의 리더십 공백은 결국 정치와 무관해야 마땅할 검사들에게 넘어갔다. 때론 정치권력 최정점의 자리를 검찰과 함께 언론이 공유하기도 한다. 정치의 언론화와 언론의 정치화도 마찬가지로 정치 사망의 결과를 낳는다.

결국 정치가 스스로 권위와 역할을 내려놓자 그 자리엔 검찰이 들어왔다. 정치와 검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치 행위가 사법의 잣대로 자주 평가되고는 한다. 최근 보았던 정치 사법화의 전형이 바로 정치적 발언에 대한 규제이다. 정치 사법화의 일종인 정치의 윤리와도윤리화도 같은 문제인데,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는 집권당집권여당 내부에서 그 어느 집단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전직 당 대표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윤리 심사의 잣대로 평가한 선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당 구성원들의 표현의 자유는 윤리 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의 공간을 윤리가 대신하고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사법이 들어온 현 상황이 지속되는 한 정치복원은 영원히 요원하다. 반정치주의라는 반정치사상과 반정치적 행태를 근본적으로 절연하지 않는 한 정치 불신과 혐오는 지속해지속적으로 반정치주의자들의 정치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반정치주의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정치와 절대로 가까워서는 안 될 사법 권력이 들어오고 정치 DNA가 없는 자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한국 정치의 마지막 남은 희망은 반정치주의와 대적하는 정치주의자들에 의한 정치복원뿐이다. 정치복원은 전 국민적 바람이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한 진영이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중대한 과제이다.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적 시민들이 정치복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 때 비로소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 정치가 한 발짝이라도 미래로 전진할 것이다. 정치복원은 대한민국의 공멸을 막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현실적 과제가 되었다. 정치복원을 위한 길에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세력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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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실종이 된 것은 아무래도 쉽고 편함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을 까고 욕하면서 얻는 쾌감들이 상당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의해서 쾌감을 얻다 보니 점점 정치가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합니다. 품격있는 정치 보다 선전 선동이 주는 쾌감이 커서요.
    저는 이번 코인왕 김남국 사건을 보면서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뇌 자체가 이미 변해 버렸습니다.
    민주당에 대형 악재임에도 국힘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민주당 또한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 속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다른 결정을 했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코인 관련 조사 단장으로 2030 지체들을 조사원으로 삼았으면 여론적인 파급력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내년 공천을 위한 포석으로 삼으신 분들이 있으신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악재에도 왜 국힘의 지지율을 오르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생각보다는 민주당을 까는 수준이라서. 그것 또한 아쉬웠습니다.
    누가 김남국이 잘못된 것 모를까요? 비꼬는 수법으로 재미있게 대처 했었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코인왕 김남국을 투기회사로 취직시키자 라는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여튼 김남국 코인 사태는 앞으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아주 좋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서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아쉬운 생각 뿐입니다.

    사라진 정치와 두 정당의 극단적 성향 심화. 그리고 외면하는 2030. 그리고 다가오는 내년 총선. 이 무서운 그림 속에서 청년정치가 가져야 하는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글 잘 읽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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