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다원화라는 다음의 시대정신 (신인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은 과거의 우리 사회를 굳건하게 지배했던 개념이다. 압축적 성장 시대엔 전통적 개념인 집단적 규모화가 설득력을 가졌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고도의 압축 성장이 종료된 지금 전통적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다양성이 넘쳐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각계의 목소리는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갈등을 조율하고 해결해야 할 정치는 다양화된 사회 각 분야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증폭하고 있다. 정치가 붕괴되는 이 시점에 과거의 시대정신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어나갈 새로운 시대정신은 바로 ‘다원화’이다.

1인당 소득 3만 불의 대한민국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미래의 가치는 단언컨대 다양성이다. 복잡한 사회를 하나로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다원화의 가치에 대해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는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낼 그릇조차 준비하지 못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다원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다양성은 이질적 요소의 이종적 결합을 통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다원화가 시대정신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선거 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이유도 다양성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목소리를 최대한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문이다.

다원화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득권을 해체하는 일이다. 기득권은 신규 세력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구체제를 유지‧강화시킨다. 다원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정치‧경제‧사회의 각 영역의 기득권 구조를 우선 철폐하는 일이다. 특히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양극화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경제의 독점 구조는 독점규제법에 의해 처벌까지 하는 반면 정치 양극화로 인한 독점 구조는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치는 수명을 다해 이제는 국민적 혐오 대상으로 전락했다. 최근 무당층 지지자의 비율이 양당의 지지율을 추월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치 불신은 다원화에 대한 욕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증거이다.

다원화라는 시대정신을 이루기 위한 제1의 가치는 분권화이다. 정치 권력의 분권과 비례적 책임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다원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권한이 수평적‧수직적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책임의 크기에 비례하게 정치적 책임을 지우는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다원화의 가장 중요한 기초적 가치는 분권화이다. 분권화로 나아가는 방향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에 분권화를 주도적으로 이룰 수 있는 훈련된 리더들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훈련과 학습을 통해 리더십을 키워내는 과정이다. 분권화에 따른 민주적 리더의 양성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시대정신적 요구이다.

다원화로 가기 위한 제2의 가치는 국제화이다. 문민정부가 주창했던 세계화는 국제화로 가는 길목의 문을 열었던 것에 불과하다. 이제 세계화에 따른 결실을 거둘 시점이다. 그것이 바로 국제화이다. 세계 자유무역이 확대된 지금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고 전 세계는 글로벌 네트워크로 묶이고 있다. 다원화를 이루기 위해 국내적으로는 분권화를 통한 권한 나누기를 시행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제화를 통해 글로벌 시대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이젠 국내 1위로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피할 길이 없다. 당당하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만 하고 세계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원화의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 외교 전략도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에만 목숨을 걸 것이 아니라 한중, 한러 관계를 포함하여 제3세계와의 적극적 연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과거처럼 다원화되기 전 사회의 정답은 단순하고 간단했다. 그러나 지금 다원화라는 가치 체계 속에서는 단순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한 답을 제시하며 불완전한 정답에 대해 과도한 맹신을 하는 태도는 오히려 매우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다원화를 이룰 제3의 가치는 성숙화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충분한 외적 성장을 거둔 국가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성숙화의 가치가 필요하다. 성숙화는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한데 제도의 외형적 측면에서는 선진화가 필요하다. 즉,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제도의 선진화를 추진해야 한다. 낡은 제도로는 다원화된 사회를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법조, 언론, 의료 등 낙후된 사회 제도를 다원화의 요구에 따라 발전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으로 인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숙화에 따른 제도의 선진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제도적 개혁을 안정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라도 정치 세력 간의 합의와 연대의 모습은 필수적이다. 정치의 다원화와 제도의 선진화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숙화의 또 다른 가치는 사회적 신뢰자본의 누적이다. 제도의 외형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내용을 채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존중과 노력 그리고 상대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성숙의 가치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성숙화는 불가능하다. 신뢰자본은 무너뜨리기는 너무 쉬우나 한 단계씩 쌓아 나아가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다원화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신뢰자본을 쌓는 노력은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논리에 의해 전체주의적 집단적 사고에 익숙했다. 우린 뭉치기를 통해 규모의 경제도 이루었고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도 완성했다. 2023년,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의 관성을 벗어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속 뭉치면 사회적 기득권이 더욱 강화되어 희망의 사다리가 부서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분권화와 국제화 그리고 성숙화를 통해 다원화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국가 대개조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은 다원화에 있다. 힘을 한곳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 축에 힘을 분산하고 때론 경쟁하며 때론 협력하는 민주적 모델을 추진해야 한다.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자꾸 뭉치면 죽는다. 이젠 흩어져야만 살 수 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다. 사람이나 권한도 다원적 주체가 함께 공유하며 연대하고 같이 책임질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다.

길 잃은 한국 사회에 다원화라는 시대정신을 던져 본다. 우리에게 미래가 열릴 것인지는 다원화를 중심에 놓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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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흩어지면 산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어령교수님이 생각납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한 명이지만 각자의 추구하는 방향으로 뛴다면 많은 1등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의 통찰력이 개혁보수의 시선과 맞물려 새로운 물결의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합니다

  2. 오! 나도 비슷한생각했었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게 기분 좋네요.
    산업화 민주화 다원화

  3.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성장 분배 출산율 교육 등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서울공화국이라는 문제와 결부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충주시 유튜브에서 지방의회는 무슨 일을 할까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달린 댓글 대부분에서 지방의회는 하는 게 없으니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방분권이 되려면 지방 권력이 제대로 일하고 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해서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 신뢰가 바닥이고 다들 중앙만 바라보는데 중앙권력마저도 개혁의 대상이죠. 개혁과 분권을 이야기할때 위로부터의 개혁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밑바닥 지방에서부터 감시체계라든지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도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의 시작점이 기업과 경제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정치권력이 분화된다면 거기서부터도 경제적 자치와 함께 시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4. 개인적으로 신뢰는 자본보다는 지표라고 봅니다. 지표도 그자체로도 영향을 주기에 무시는 못하지만, 근거가 없으면 독자적으로 유지되지는 못합니다. 즉, 다원화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고, 이게 지속되면 의견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신뢰 자체가 다원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잭대적 공존이 다원화를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시장주의는 분명 전체적 성과가 뛰어나지만 부의 불균형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부의 불균형이 심해지면 잘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이런한 욕구를 다른 이념을 통해 표현됩니다. 사회주의: 생산수단의 공유화에 대한 주자이 생존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욕구 자체를 막는건 불가능할 뿐더러, 자아실현이라는 모든 이념의 기본목적에 반합니다. 시장주의와 자유주의는 욕구실현을 긍정하기에 지속적으로 성공했음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므로 사회가 극단적인 사회주의(공산주의) 로 가는걸 막고자 한다면, 그 욕구를 해결해줄 공화주의가 존재해야 합니다.

    시장주의 입장에서 공화주의는 의견이 다를지라도 “필요”합니다. 공화주의의 생존을 보장해줌으로서 어느정도 리스크있는 시장주의 정책도 추진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공화주의와 시장주의를 반대로 놓아도 성립되는데, 훌륭한 적대적 공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권력에 있어서 적대적 공존은 최악이지만, 이념에 있어서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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