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대학 동창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기사 하나를 전송받았다. “여직원 손에 코 푼 휴지 쥐여 준 전북도의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네가 속한 의회에도 이런 인간들이 있나? 진심 무쓸모다.”라고 덧붙였다. 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식은땀 흘리는 이모티콘만 답장으로 보냈다.
난 왠지 모르게 그 보도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지난 10년 동안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봐왔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비교해 보면 코 푼 휴지 쥐여 준 도의원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속에는 심하면 심했지 더 한 의원들이 많다.
사설 교육기관의 운영을 겸직하고 있는 의원이 의회 사무처 직원들을 시켜 퇴근도 시키지 않고 수업에 쓰일 교육 재료를 만들게 하거나, 일본 해외연수 중 공공장소에서 직원에게 ‘왜 한국 고추장을 챙겨오지 않았느냐’라며 사자후 수준으로 면박을 준다거나, 이중 주차한 본인의 차를 제대로 대놓고 오라며 직원에게 차 키를 던지는 등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을 직접 봐왔기에 이번 전북도의원의 코 푼 휴지 이슈는 어찌 보면 익숙(?)하다.

성남시의회가 아니더라도 포털 사이트에 ‘지방의원’, ‘논란’만 검색해 보면 금방 다른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천 남동구 소속의 모 구의원은 지역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마트와 신규 점포를 홍보하는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내용은 이렇다. ‘기업형 대형마트의 입점으로 골목 상권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시대적 흐름과 대승적 차원에서 커피, 반찬 가게를 새롭게 오픈합니다.’ 참 시대를 역행하는 의원이다.
과천시의회의 모 의원은 ‘사회적 경제와 4차 산업 현장 견학’ 차 캐나다 몬트리올로 해외연수를 떠났는데 알고 보니 사전에 제출된 연수 계획서와 달리 대부분의 일정을 이민을 떠난 자신의 가족과 상봉하는 시간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연수 중 자신의 아들이 재학 중인 몬트리올 레이크사이드 학교와 관할 교육청인 피어슨 교육청을 방문해 아이의 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나랏돈 살살 녹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쓸 수 있겠다.


이런 뉴스들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 기초의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1991년 지방자치 시행 이후 제도의 순기능이 발휘되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릴만한 사건들만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기초의회는 어쩌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식의 ‘무쓸모’로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방자치 무용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못’ 바꾸는 걸까, ‘안’ 바꾸는 걸까
이런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 문제를 일으킨 개개인의 사고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난 결국 기초의원 개인의 역량보다 당에 대한 충성도를 더 높게 평가하는 공천,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국회의 습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오랜 토호 세력들이 돈과 조직을 앞세워 선거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자정적 역할, 그리고 돈과 조직이 없는 인물의 발판이 되는 점에서 정당의 공천은 그 순기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용론이 자주 거론된다. 무엇보다 지방자치가 ‘자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성을 크게 억누른다는 점 때문이다.
우선 후보를 선택하는 공천 과정에서 지역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의 추천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의정 역량 또는 전문성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지역 국회의원과의 조화 또는 입맛 차원에서 고려되는 후보들에게 공천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이뤄진 공천과 선거의 당선은, 당선 이후에 해당 지역 국회의원과의 종속적 지위를 갖게 되어 당의 논리나 중앙정치에 매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나는 지난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시도했던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이하 PPAT)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행정 고시를 통과한 지방 공무원들을 상대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역량을 갖춘 기초의원들이 등원해야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 대표가 말했던 제도의 도입 취지이다. 정확한 진단이었다. 5분 발언문 원고 한 장을 제대로 쓰지 못해 상임위 전문위원 또는 직원에게 발언하고 싶은 주제만 알려주고 원고를 쓰도록 지시하거나, 지역 기자에게 대필을 요구하는 의원이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입법부의 기본인 효과적인 견제와 감시를 바라기는 어렵다.

이 대표가 바랐던 PPAT 도입 목적의 핵심은 따로 있다. 앞서 언급했던, 기초의원의 실질적인 공천권을 쥔 국회와 당협위원장의 입김으로부터 떼어내게 하자는 의도다. 그래야 역량과 능력으로 평가받은 훌륭한 기초의원들의 등원으로 ‘지방자치를 지방자치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목적에 완전하게 도달하지는 못했다. 기초자격시험 그 자체를 후보의 단일 선별 기준으로 삼지 않았고 시험의 성적과 관계없이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의 공천권 추천은 기존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우리 당 혁신위의 공천 제도 개선 방향을 살펴보고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대안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4 comments
저도 지방 촌구석 살지만
우리지역 모 시의원은 깡패에다가 여러사건을 봤죠
뭐 일잘하는지는 알 수없지만 우려가 되죠..
여담으로 이기인의원님 늦은밤에 야식사진 sns는 참 힘들게합니다ㅠㅠ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실력은 고사하고 무식한 시 ㆍ군ㆍ도의원들 많아요.
무식하면 도덕적이기라도 해야하는데
그것도 쓰레기같은사람들…
심히 걱정입니다.ㅜㅜ
개인적으로 천아용인을 통해 이기인 의원님을 알게되어서 기쁩니다.
국민들 학력 수준은 점점 높아져 가는데
의외로 정치인들의 수준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최소한의 자격 시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식한 정치인들…… 너무 많아요 😰😰😰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약간 다른 관점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용인 포곡에서 식당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젋은 층도 그렇고 나이 먹은 층도 그렇구요. 장사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게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요식업 종사자 분들을 약간 하인 느낌으로 생각하십니다. 내가 돈을 주니 너희는 음식을 대접하는거 아니냐 라는 마인드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런 마인드는 당연한 마인드입니다. 손님이 왕이지 가게가 왕은 아니지 않냐? 맞는 말입니다. 저도 나이 드신 손님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젋은 층은 약간 다릅니다. 성향 자체가 다릅니다. 그냥 다릅니다. 거의 모든 젋은 층은 음식을 가져 갈 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합니다. 물론 저희도 인사를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젋으신 분들이나 저희의 고객이기 때문에 모두 다 같은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런 인사는 없습니다. 특이하게 젋은 층에만 그런게 있습니다. 물론 전부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많은 분들이 그렇습니다.
지방 정치하시는 분들의 일탈에 대해서 뭐라 말할 것은 없지만 이게 어떻게 보면 나이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세대와 윗 세대는 엄현히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세데라고 생각합니다.
십여년 전인지 몇 년전인지 기억 나지 않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5.18 행사 끝나고 가서 술판을 벌인 케이스 던가? 그거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 그들 세대에서는 술 퍼먹고 노는게 일상이지만 우리는 피씨방 세대이기에 게임하는게 익숙하니까요. 뭐 그런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시스템의 변화도 있어야 하지만 세대가 가지는 가치관의 차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보니… 대감, 영감들이랑 우리 신진 사대부들이랑은 격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