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밀도 1위 국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허은아)

일하는 사람은 세금을 내는데, 일하는 로봇은 왜 세금을 안낼까
로봇 밀도 1위 국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어릴 적 태권브이나 마징가제트에서 본 로봇은 신기하긴 해도 진짜 저렇게 될 것이라고 크게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돌아온 아톰의 주인공 로봇이 현실성 있어 보이긴 했다. 덩치도 생김새도 사람과 비슷해서였겠지만, 격납고에 있다 필요할 때가 되면 ‘출동’하는 로봇과 달리, 우리 곁에서 함께 생활하며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아톰의 생년월일이 무려 2003년이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삐삐에서 핸드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급격한 기술의 진보를 몸소 겪고 있었지만, 그래도 로봇은 ‘내 일’이라기보단 ‘남의 일’이요, ‘아직 멀었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더키디가 우주 함선을 타고 외계인과 싸운다던 2020년이 되었을 때도, 세상은 우주 함선이나 외계인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초거대 AI의 등장과 사무직의 위기,
대량 생산과 그 공급망의 현장에서 인간의 설 자리가 사라진 세상.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아니 몇 달 사이 상황이 바뀌었다. 어쩌면 당연히 보이던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챗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인공지능, 초거대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깊숙하게 우리 일상을 파고든 것이다.

작년 말 무렵부터 시작된 챗GPT 열풍은 기존의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몇몇 빅테크 기업이나 활용 가능하다고 믿었던 AI 서비스를 사실상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쓸모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미 몇몇 대기업에선 업무에 챗GPT를 활용해 성과를 내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능한 범위와 반면에 보안상 사용해서는 안 되는 한계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챗GPT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AI로 대체될 수 있는 업무에는 신규 채용을 중단하겠다는 100년 전통의 빅테크 기업의 방침이 나왔다. “고객과 대면하지 않는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 2만 6,000명 가운데 30%는 향후 5년에 걸쳐 AI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수 있다”라고 했다는 것인데, 수천 명의 일자리가 AI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는 걸 공식화한 셈이다. 해당 기업이 변화와 혁신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아 더욱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 공정을 넘어 로봇이 쓰이던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초기엔 분명한 한계로 인해 사람을 보조하는 데 그치거나 일부 대체 가능한 수준부터 시작했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몇몇 시스템 제어자만 남긴 채 사실상의 무인화 공장을 가능하게 한지도 벌써 한참 전의 일이다. 그래서 국내 자동차 기업이 새로운 로봇 자동화 공정을 도입한 결과, 필요 인력을 기존보다 20%가량 줄였고, 덕분에 차량 한 대 생산 시간이 2분 10초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보도 역시 눈에 띈다.

컵라면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
로봇이 차량 한 대를 생산하는 세상.

로봇이 보편화되어도 인간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단순 반복 업무와 같은 일부 생산 현장 등을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보조자의 역할에 그칠 것이지 인간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믿음은, AI의 보편화로 인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AI가 만든 사진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고, AI가 창작한 소설과 음악, 그림 역시 이미 평균적인 일반인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직이라고 인기가 높은 변호사와 전형적으로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인 사무행정직이 AI 도입으로 해고 위협에 놓일 가능성이 가장 큰 직군으로 꼽혔다는 보도가 예전과는 다르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또한 AI의 성과를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이지 당장 오늘 내일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아직까지는 복잡한 코딩을 해결해 주는 AI와, 인간의 체력적 한계를 극복한 로봇처럼, 어디까지나 인간의 통제 아래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느껴왔고, 또 체험하고 있듯이, 기술의 발달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의 대부 격인 개발자들이 잇달아 연구 중단과 같은 극단적인 제안까지 서슴지 않으며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구자와 괴짜를 넘나드는 미국의 기업가가 대당 2만 달러에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가졌지만 인간의 2배 속도로 걸으며 물건도 옮기고 제품 조립도 가능한 로봇을 빠르면 내년부터 시판하겠다고 했다는데, 하루빨리 눈으로 볼 수 있길 바라야 할지, 그의 다른 공언처럼 과장으로 귀결되길 바라야 할지 애매하다.

분명한 건 로봇도 AI도 이미 인간과의 동행을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제 와서 멈추거나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배터리 문제 등 부차적인 것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AI와 로봇의 결합, AI가 AI를 만들고 로봇이 로봇을 만들어내는 세상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일하지 않아도 된다,
과연 좋기만 할까.

자동차가 마부를 대체하고, 컴퓨터가 계산원을 대체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더 이상 사냥은 안 하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타이프는 사라졌지만 개인 컴퓨터와 태블릿으로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든, 일하지 않아야 하는 인간이든, 짧게는 수천 년에서 길게는 수만 년까지 인류의 DNA에 새겨진 근로와 노동의 개념이 옅어지고, 반면 호모 헌드레드라고 불릴 정도로 수명은 늘어나게 된 환경에서 인류는, 그리고 문명은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

생각하면 반가울 수도, 반대로 아찔할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늘 그랬듯 어떻게 준비하고 대비하냐에 따라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천지 차이로 갈릴 것이라는 점이다.

로봇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 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어 소득을 올릴 기회를 원천 봉쇄하면서도, 일부 사업주 등에겐 무한한 부가가치를 안겨줄 로봇에게도 별도의 세금을 매겨야 할지는 80년대 후반부터 몇몇 학자들의 주장으로 알려져왔지만, 이제는 그 무게감이 과거와 다르다.

전통적인 경제 주체는 가계와 기업, 정부라고 하지만, 이론상 저비용으로 무한한 생산이 가능한 로봇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가계와 정부에 이어 기업이 경제 주체로 자리 잡은 것도 불과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았고, 현대 법체계에서 법인이라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만들어진 것도 인류 역사에서는 짧은 편에 속하다. 그렇다면 산업 현장에서의 역할과 인간의 대체 정도에 따라 로봇을 또 하나의 경제 주체이자 법인 형태로 규정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EU에서는 이미 2015년부터 로봇에게 ‘전자 인간’ 지위를 부여하고, 로봇을 사용함에 따라 실직한 근로자를 위해 세금을 부과하는 로봇세 도입의 법제화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2017년에는 유럽의회가 로봇의 개발과 확산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및 법적 책임 등에 대한 입법 조치로서 ‘로봇공학의 민사법 규칙에 관한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로봇세는 최종 부결되었고, 빌 게이츠가 로봇 사용자에게 소득세 수준의 세금을 매기자거나 미국 대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가 로봇세 도입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로봇세를 입법화한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로봇이 갖는 역할의 한계나 지금은 로봇 산업의 육성이 우선이라는 시기상조론 등 반대 입장도 타당했기 때문이지만, 초거대 AI의 등장으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선두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지금 준비해야.

지난 대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의힘은 로봇세는 신중히 검토하자는 입장이었다. 먼 미래의 이야기니 당장은 로봇 산업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고,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경제부총리가 지금은 일단 로봇 산업을 좀 더 육성하도록 해야 하고, 세금 같은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데이터세, 국토보유세에 더해 로봇세까지 부과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자고 주장했지만, 기본소득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고 로봇세를 재원으로 삼겠다는 주장은 오히려 로봇세의 필요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구직을 단념한 청년 비중이 EU 평균의 2배 가까이 되는 등 부작용이 늘자 4년 만에 기본소득 정책 축소에 나선 이탈리아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의 육성이 필요한 지금 단계에서 로봇세는 시기 상조일 수 있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작년 말 챗GPT의 등장에서 보듯, “먼 미래”는 “가까운 미래”로 바뀌는 중이고, 정부 역시 올 가을 디지털 권리장전 선포를 준비하면서 로봇세 부과를 쟁점 중 하나로 꼽았다. 보조자로서의 로봇이 아니라,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로봇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로봇연맹의 ‘2022 세계 로봇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수를 뜻하는 산업 로봇 밀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네 자리 수인 1000대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싱가포르가 670대를 기록했지만 도시국가라는 특성을 감안해야 할 테고, 로봇 생산량은 세계 1위인 일본이 밀도에선 399대로 3위를, 전통의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397대로 4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결국 우리가 선두에 설 수밖에 없다. 로봇세를 도입할지 여부에 대한 결론은 물론이고,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와 대책은 무엇인지, 도입한다면 그 범위와 형식, 기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가 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으며, 생각보다 빨리 결론을 내야 할 수도 있다.

오늘도 미래보다는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부끄러운 국회의 자화상을 보면 가능할지 의문이 남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절호의 기회를 놓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로봇세 도입에 대한 논의에 즉시 나서야 한다.

AI와 인간의 공존은 과연 유토피아 쪽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 쪽일까.

우리는 늘 그랬듯 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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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현대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것을 보고 국내의 민간기업도 최신기술 선도 및 확보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글의 내용처럼 앞으로 발전하는 신기술에 대해 국내의 법적 제도적 미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원님께서 현역 의원으로써 관련하여 많은 입법활동과 그 홍보에 더욱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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