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주를 향해서, 호남을 향해서 (곽승용)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 나오나. 전라도는 영원히 10%다”

지난 3월, 전광훈 목사가 예배 중 던진 저주성 망언이다. 이 예배에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참석하여 “나도 그것은 반대”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심지어는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며 윤 대통령 공약의 진정성마저 평가 절하했다. 결국 김 최고위원은 현재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어제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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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너알아TV’ 캡처

그런데, 정말로 ‘전라도는 영원히 10%’일까?

최근 치러진 선거 결과들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광주 12.72%, 전남 11.44%, 전북 14.42%의 득표율을 얻어 호남권 전 지역에서 10%를 상회하는 득표에 성공했다. 더불어 보수 정당 역사상 호남권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달성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재명 후보와 0.7% 차이로 이긴 초박빙 대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윤석열 후보가 호남권에서 10%를 넘기지 못했을 시, 대통령 선거는 패배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대선 직후 연달아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어땠을까?

광주에선 국민의힘 주기환 광주광역시장 후보가 15.90%를 받았다. 전북에선 국민의힘 조배숙 전북지사 후보가 17.88%를 받았다. 전남에선 국민의힘 이정현 전남지사 후보가 18.81%를 받았다. 2022년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 전남, 전북의 국민의힘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모두 15%를 넘기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5%는 선거비용 100% 보존을 받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아주 중요한 수치다. 즉,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이제 국민의힘 후보자들이 호남에 출마해도 선거비용을 100% 보존 받을 수 있다는 한 줄기의 커다란 희망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에 따르면, “전라도는 영원히 10%”라고 하는 전광훈 목사의 말은 이미 틀린 말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10%를 넘어, 20%에 근접해 가고 있었다. 거기에 대고 “전라도는 영원히 10%”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다시 호남에서 미움받는 정당이 되기를 기원하는 저주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 당에 대해 저주를 퍼붓고 있는 사람 앞에서 좋다고 웃으며 “나도 (5.18 정신 헌법 수록은) 반대”라고 맞장구쳤던 김재원 최고위원의 행위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근 몇 년간, 국민의힘이 역대 최고의 호남 득표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살펴볼 부분은 김종인·이준석 체제에서 시작된 ‘역사와의 대화’이다. 김종인·이준석 체제 아래서 국민의힘은 5.18과 관련한 망언을 일삼던 당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광주의 아픔과 마주하는 당이 되기 시작했다. 5.18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염원했던 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뜨거운 항거였음을, 정의로운 민주화운동이었음을,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한 숭고한 희생이었음을 확인했고 그렇게 국민의힘은 역사 앞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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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출처: 뉴스1

김종인·이준석 체제가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광주에 다가갔다면,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광주 복합 쇼핑몰 공약’으로 시민들의 생활 앞으로 다가갔다.

그동안 호남에서는 ‘호남 홀대론’을 대체할 만한 강력한 정치적 정서가 등장하지 않았다. “영남 출신 정치인들이 몇 십 년 동안 집권하며 영남의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안, 우리 호남은 홀대받았고 소외당했다”는 정서는 전라도 전체에 깊게 깔려 선거철만 되면 아무리 미워도 ‘우리 김대중 선생님과 호남인들의 당’이었던 민주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는, 그런 지역의 투표 문화가 반복되었다.

그 ‘호남 홀대론’이라는 강력한 정서 앞에 ‘광주 복합 쇼핑몰 공약’은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최초의 도전이 되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총 15년 동안 민주당이 집권을 했음에도 여전히 지역의 경제는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점과 더불어, 전국에 다 있는 복합 쇼핑몰 하나도 호남에 입점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이 공론화되며 ‘호남 홀대론’의 논리적 근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투자하여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소비자들의 생활 인프라 수준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의 광주 입점’을 막은 것이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에 얹어, “이제는 더 이상 민주당이 복합 쇼핑몰의 광주 입점을 막아서지 못하게 하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광주 연설은 발표와 동시에 광주 시내를 뒤흔드는 핵폭탄급 이슈가 되었다.

2022년 무등일보(코리아리서치 의뢰) ‘복합 쇼핑몰 유치’ 여론조사 결과

그렇게 김종인·이준석 체제가 시작한 ‘역사와의 대화’와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광주 복합 쇼핑몰 공약’을 통해 시작한 ‘호남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잘 어우러져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에서 보수 정당 역사상 호남 최고 득표율 달성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랬던 시간이 벌써 1년 전이다. 광주 복합 쇼핑몰 공약을 대선 캠프 내에서 제안했고, 지방 선거 때는 고향인 광주 북구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직접 뛰었던 내게는 정말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지금 내가 이 시간들이 “꿈만 같았다”고 얘기하는 것에는 슬픈 이유가 있다.

힘겹지만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던 우리 당이 지금은 전광훈 목사의 저주 발언에나 휘둘리고 있고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그 시간들이 꿈만 같게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30% 초반에 갇혀있는 국정 수행 지지율, 계속해서 터지는 여당 지도부의 망언 및 사건·사고, 심각한 수준인 대통령 비호감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 지표, 정부의 외교 성과에 대한 국민적 실망, 총선 공천을 앞두고 관측되는 불길한 기류들. 이런 것들로는 절대 다시 호남에 다가갈 수 없다. 호남 시민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다.

이 시점에, 다시 5월의 그날이 다가왔다. 작년 그날, 대통령께서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과 함께 기념식에 참석하는 진정성을 보였다. 작년 그날에 대통령께서 보이신 그 진정성은 꽤 화제가 되었으나,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작년 그날에,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약속하셨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한 메시지를 발표했다면, 그 시점에서만큼이라도 광주시민들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아직 기회는 있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다시 호남에 진정성 있게 다가갈 생각이 있다면 이번 5.18 기념식에서의 메시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대선 기간 동안 약속한 그 공약에 대한 어떠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그 공약을 시작으로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는 전광훈 같은 인물이 이 정부와 당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보수의 불가역적 변화를 다시 추동해야 희망이 있다.

과연 대통령께서 그러한 결단을 내릴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분명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지난 선거들에서 국민들이 변화하는 보수, 과거로부터 벗어난 보수, 합리적인 보수, 포용하는 보수를 기대하고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그런 보수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P.S. 이 글은 대통령의 5.18 미참석 보도 이전 작성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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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한결같이 이준석 대표님과 천아용인 개혁보수 청년 정치인들 응원하겠습니다.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모두 고공행진 함께가요.사랑합니다 ♥️

  2. 대통령은 참석을 안한다네요 젊은층도 호남도 버리면 총선은 이미 끝난거네요 선거를 떠나서 호남과 함께가야하는거 아닌가요 정말 서글픕니다

  3. 이제 솔직 윤핵관들 하는거 보면 진정성이 하나도 안보임 조상묘도 파는 놈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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