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맞불이었나 (이기인)

누구를 위한 맞불이었나
(부제: 이재명 공공장소 흡연 사진 공개의 전말)

불이 타들어 가고 있는 곳 맞은편에 일부러 불을 질러 거센 불길을 잡는 것을 ‘맞불’이라고 한다. 보통 어떤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역으로 일으키는 사건을 의미한다. 나는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이른바 맞불 작전을 편 적이 있었다.

당원이라면 누구나 ‘열정 열차’를 기억할 것이다. 이준석 당 대표와 수십 명의 청년보좌역들이 달려들어 기획했던 비단 주머니 중 하나. 지방 도시들을 돌며 정책 공약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기획한 이 열차는 기존 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최초의 ‘열차 선거 차량’이었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무궁화호 열차 4량을 통째로 임대할 정도로 과감한 시도였던 이 열정 열차는 선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 사건으로 인해 ‘민폐 열차’로 전락했다. 선대위의 공보단장이 공개했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순회 일정 차 호남으로 이동하던 윤석열 후보가 사람이 앉는 좌석 위에 구두를 신은 채로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사진 속엔 공보단장이었던 이상일 단장과 김병민 대변인, 윤석열 후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이상일 단장 왼쪽으로 비어있는 좌석 위에 맞은편 좌석에서 구두를 신고 쭉 뻗은 후보의 다리가 좌우 꼬여진 채 올려져 있었다.

놀랍게도 해당 사진은 실수로 유출된 게 아니었다. 선대위 공보단장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렸다. 아마도 후보와 이렇게나 가깝게 소통한다는 과시용 게시물의 일환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사진 한 장으로 후보와 우리 당은 ‘공중도덕 참사 후보와 방관 참모’의 조롱을 들으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장시간 이동으로 다리의 경련이 와 참모진에 양해를 구하고 다리를 올린 것’이라는 해명이나 당 소속 의원들이 방송에 나가 했던 ‘발의 질환이 있었다.’ 등의 변명은 싸늘한 민심을 달래기 부족했고 외려 불 난 여론에 부채질만 하는 꼴이었다.

악화일로로 향하는 이 사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잘못한 건 분명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앞당기는 일은 막아야 했다. 화제를 전환할 계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이재명의 실내 흡연 사진이다. 2014년 성남FC 창단식 이후 뒤풀이에 참석했던 이재명 구단주가 구단의 경영진과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장면 그리고 종이컵에 재를 떠는 사진이었다. 그 주변에는 당시 구단 팀장인 이석훈 경기도 주식회사 대표이사, 한신수 수정구청장 등 이재명의 측근이라고 분류되는 공무원과 직원들이 배석했다.

참모들에 둘러싸여 흡연이 금지된 식당 내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진이라니. 우리 측에 난 공중도덕 산불이 더 크게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맞불의 땔감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곧바로 난 페이스북에 <공중도덕 대참사>라는 제목으로 그 사진들을 올렸고 해당 사진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성남 내 공중시설에서 흡연을 단속하겠다는 성남시장 시절의 트위터 게시물과, 넘치게 사랑해주던 부모님 덕분에 술, 담배 같은 일탈은 선택지에 없었다는 이재명 본인의 인터뷰는 해당 사진의 논란을 더욱 빠르게 확산시키고 크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공개한 이재명의 식당 흡연 사진으로 인해 우리 측 진영의 구둣발 열차 논란은 희석됐고 양측 진영의 맹공과 역공으로 이어지는 정쟁으로 비화 됐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맞불 작전. ‘우리 후보만 문제가 아니라 저쪽은 더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한쪽으로 치우친 비난 여론은 두 후보가 함께 부담하게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하기 경쟁이 아닌 누가 더 최악인지 정쟁의 장을 만든 장본인인 것 같아 씁쓸한 후회도 드는 것이 사실.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모두 흙탕물 싸움을 감수했고, 맞불을 놓을 때 쓰일 땔감의 부스러기들이 손에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이재명 시대를 막은 것에 환호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손에 더러운 것만 묻히고 이재명 시대를 잠시 유보한 것에 그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지지율은 내려가고 젊은 층의 지지는 온데간데없는데 잘하라는 쓴소리가 총질로 폄훼되고 정부의 실책에 어떤 충언도 붙일 수 없는 작금의 현실.

그때 질렀던 나의 맞불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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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1. 더 웃긴 것은 저 다리를 올렸던 자리가 바로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자리였다는 점이죠.

    정말 무례하고 당 대표에 대한 예의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리를 위해 저런 장면들도 흐린 눈으로 일관하고 어떻게든 장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사람들이 지금 겪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러게 말입니다. 대통령은 조직생활을 했던 분이라 지금도 그때처럼 조직원들이 맞불작전까지 펼쳐서 정부를 뒷받침을 원하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수는 없었으니 과거는 내려놓으시고 앞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수를 개혁할것인지 고민해볼 타이밍 인듯합니다. 잘못한걸 잘못했다고 하면 적으로 모는 시대이네요. 어찌됐건 수구보수도 같은 보수라 그들도 용납할수 있는 대안으로 나아갈수밖에 근데 그런 대안이 있을까요? 꼭 있어야지만 조금씩 다가가 변화하는 시작점 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이기인의원을 응원합니다.

  3. 아~! 기억 납니다! 이슈대응 기가 막혔던 거 기억하고 말고요.
    이런 뒷얘기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앞으로도 많이 풀어 주세요.

    1. 우던 좌던 이슈선점 및 물타기는 예전부터 해왔지만, 보수만 찍던 나에게 궁금했던게 보수는 왜 항상 민주당에게 이슈선점을 당하고 물타기를 당하며 세련되지 못할까? 였다. 분명 그게 다가 아닌건 알고 있으나 정치 무관심층에게는 뉴스1면 꼭지 탑층에 노출되면 될수록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처럼. 그랬던 보수가 이슈전쟁에서 항상 우위였고 대응방법 그리고 가장 미쳤다고 생각한 “대응속도” 였다. 그래서 난 젊은 보수지지자층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지난 보궐, 대선, 지선은 보수로 살아오면서 가장 샤이하기 싫었던 기간이였다. 그리고 그들이 등돌리는게 두렵다.

  4. 그때 앞장서서 쉴드처준게 우리들이고 20 30대 였는데 저들이 알까나.. 시간이 지나면 평가가되겠지만 너무나 분하고 화가나네요

  5.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이기인 의원님~
    늘 응원합니다

  6. 그러게요.. 기억나네요. 누가 더 잘못한건지 경쟁이라도 하는듯 했었죠.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심리가 작동했던건 사실이었죠. 아..이리도 인물이 없는가.. 탄식을 했었죠.

  7. 우던 좌던 이슈선점 및 물타기는 예전부터 해왔지만, 보수만 찍던 나에게 궁금했던게 보수는 왜 항상 민주당에게 이슈선점을 당하고 물타기를 당하며 세련되지 못할까? 였다. 분명 그게 다가 아닌건 알고 있으나 정치 무관심층에게는 뉴스1면 꼭지 탑층에 노출되면 될수록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처럼. 그랬던 보수가 이슈전쟁에서 항상 우위였고 대응방법 그리고 가장 미쳤다고 생각한 “대응속도” 였다. 그래서 난 젊은 보수지지자층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지난 보궐, 대선, 지선은 보수로 살아오면서 가장 샤이하기 싫었던 기간이였다. 그리고 그들이 등돌리는게 두렵다.

  8. 진짜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요번에 이기인 알았는게 큰 수확 !! 응원합니다

  9. 그 당시에 사진을 퍼나르던 젊은 세대는 지금 대부분 돌아섰네요. 씁쓸한 현실입니다.

  10. 이번 전당대회의 큰 수확은 이기인이라는 정치인을 알게된 것..이제 더 유명해지시길…

  11. 그 당시에도 이기인 의원님의 활약이 있었군요..
    아마 이번 전당대회가 아니었다면 이기인 의원님을 몰랐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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