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견문기 2(곽승용)

무지개의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 지금 미국은 문화전쟁 중

[포틀랜드(Portland)에서 목격한 퀴어 집회]

미국, 지금의 미국은 그야말로 무지개의 나라이다. 미국 어디를 가더라도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곳곳에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식당, 카페, 호텔, 길거리 상점, 하물며 교회에까지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다. 그만큼 지금 미국 사회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가장 뜨거운 화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과 달리 미국은 교회에서도 성소수자를 받아들였다. 미국 개신교계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기로 시작한 지는 벌써 10여 년 정도가 되었는데, 처음 이 결정에 반발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났으나 지금은 성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교회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자긍심의 달 – 성소수자의 인권의 달)로 불리며 퀴어 축제가 열린다. 이미 많은 관공서 건물에 성 중립 화장실(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비수술 트렌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은 남/녀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화장실 체계에서는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여론으로 인해 설치되기 시작했다)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미국에서 3주 동안 참여했던 수많은 회의 중에 LGBTQ와 관련한 의제가 등장하지 않은 회의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에서 진행했던 회의 중 미 국무부 소속의 한 공무원은 우리에게 “성소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라는 꽤 위험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미 행정부 소속의 공무원이 타국에서 온 청년 정치인들에게 “당신네 나라에서도 어느 법안의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위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미국 사회 내에서 “LGBTQ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매우 강한 상태이다.

[디모인(Des Moines)에서 방문한 상점에서 팔고 있는 LGBTQ 관련 상품]

이러한 주장과 사회적 흐름은 주로 Liberal(한국에서 통용되는 ‘자유주의’라는 개념의 의미와 달리 미국에서는 사실상 ‘진보주의자’들을 ‘Liberal’이라고 부른다)이라고 불리는 진보 진영이 주도하고 있다. 성소수자 또는 소수자 차별과 관련한 의제는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지속해서 확장되었는데 트럼프 행정부 시기 일시적으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재확장되는 추세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사회 내에서 무지개 깃발과 심볼을 내걸며(무지개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의미한다) “우리는 LGBTQ에 친화적이에요~”라고 광고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인/단체임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에 따라 ‘도대체 LGBTQ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 업종의 기업과 점포들도 고객층 확대를 위해, 마케팅의 수단으로라도 무지개 심볼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 사회는 이 ‘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문화 갈등에서 진보 진영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Darcy 호텔. 내가 워싱턴 D.C에서 지낼 때 머무른 곳이다. LGBTQ에 프렌들리한 호텔과 그렇지 않은 호텔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 호텔도 LGBTQ에 친화적이라는 마크를 내걸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론이 심상치 않다. 지난 달, 미국의 한 대형마트 체인인 ‘타깃’이 ‘남성 성기가 있는 트렌스젠더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가랑이 부분을 잘 가리게 만들었다’는 수영복을 미국 전역, 1900여개가 넘는 매장에 내놓고 ‘LGBTQ Friendly’ 상품으로 홍보했다가 대대적인 비판에 직면하여 상품을 철수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타깃의 시가총액이 2주만에 139억 달러(18조원)가량 증발했다.

[“집어넣기 쉬운 구조, 가랑이 추가 커버” 비수술 트렌스젠더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안으로 집어넣기 쉬운 구조로 만들었고 가랑이 부분이 잘 가려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미국 최대 맥주 회사인 앤하이저부쉬의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 역시도 트랜스젠더 여성 SNS 스타에게 맥주를 협찬했다가 역풍을 맞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하며 협찬을 주도한 고위직원 2명이 휴직 처리됐다. 미국의 백화점 콜스도 무지개 로고가 들어간 아동복을 내놓은 후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과거 무지개를 내걸고 “우리 기업은 이만큼 LGBTQ에 친화적인 도덕적이고 올바른 기업이에요”라고 홍보했던 행위가 마케팅이 되던 시절에서 이제는 보수주의자들의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는 상황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류에 얹어 최근 공화당이 장악한 20여개 주에선 성전환 치료 금지, 성정체성에 따른 화장실 사용 금지, 학교 내 성정체성 토론 금지, 성전환 선수들의 대회 출전 제한 등 반(反)트랜스젠더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내가 미국에서 직접 만난 보수주의자들은 근 10여년간 미국 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흐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나에게 표출했다.

사실, 나는 이러한 문화적 갈등에 매우 익숙하다.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러한 문화적 갈등 상황을 겪기 어렵지만, 내가 다녔던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이미 7~8년 전부터 벌어졌던 갈등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공회대학교는 국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학인 관계로 당연히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 진영이 학 내 여론을 주도하고 있고 그에 반발하는 보수주의적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찌되었든 수면 아래서라도 이 갈등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 간혹 가다 나처럼 학내 진보진영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 온갖 조리돌림과 살해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당시 피력했던 나의 입장은 아주 간단했다. “당신이 어떤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던지 나는 관심 없다. ‘동성애는 죄,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발언을 언어적 폭력이나 혐오발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동의하겠다. 다만, 학 내의 모든 구성원이 성소수자들에게 옹호적인 사고를 갖도록 강제로 교육을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소수자들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혐오표현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모든 발언들까지도 모조리 혐오발언으로 규정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나의 입장이었다.

이 정도를 이야기했을 뿐인 데도, 나는 극악의 차별주의자 및 혐오주의자로 낙인 찍혀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 부분이 바로 소수자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갈등 지점이다.

내가 가졌던 입장은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것이 정당하다’가 아니다.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에는 동의했다. 다만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 타인의 사고를 내 뜻에 맞게 뜯어고치기 위해 전 학생에게 특정 이념 교육을 강제한다거나 ‘소수자들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별, 혐오표현이 아닌 발언 마저도 규제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반발만 심해질 뿐이고, 근본적으로 그러한 방식은 전체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발언 마저도 ‘백래쉬(진보적인 사회변화에 대해 기득권이 표출하는 반발)’로 규정하고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빻은’, ‘덜 떨어진’, ‘저능한’, ‘저질스러운’, ‘우매한’ 나아가서는 ‘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신들의 사상에 반하는 모든 입장들이 표출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으로 유일사상 체계를 확립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차별금지법’과 같은 반차별법들이다.

“그 친구는 굉장히 성격이 여성스럽다”

“흑인들은 운동을 잘한다”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여자친구 있어요?”

“XX는 잘생겼다 / 예쁘다”

우리가 아주 일상적으로 흔하게 사용하는 이러한 표현들은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진영 그룹 내에서 차별적 표현으로 취급될 수 있다. 누군가의 성격을 ‘여성스럽다’, ‘남성적이다’는 식으로 성별에 빗대어 발언하는 것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표현이기 때문에 성차별 표현이 될 수 있고, 단지 외적으로 남성인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여자친구 있냐”고 묻는 것은 이 사람의 성정체성이 당연히 시스젠더(심리적 성별gender과 생물학적 성별sex가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 남성이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흑인들은 운동을 잘 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흑인들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대신 지적 수준이 낮다’고 여겼던 과거 흑인 차별적 인식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차별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누군가의 외모를 “잘생겼다 / 예쁘다”라고 칭찬하는 행위는 타인이 노력해서 얻은 것인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칭찬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차별이 될 수 있으며, 아무리 칭찬일지라도 결국 외모를 품평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그들이 얘기하는 차별, 혐오 표현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차별, 혐오 표현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발언들을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이것이 바로 ‘인종·성별·민족·언어·종교·성적지향·성정체성·장애유무 등과 관련된 편견이 포함되는 말이나 행위를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흐름, 바로,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요즘 말로는 Woke(깨어있는) 사상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Woke(깨어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신념을 ‘깨어있는 사람들의 우월한 도덕적, 정치적 의식’으로 여긴다. 반대로, 그러한 자신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깨어나지 못한 우매하고 열등한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여긴다. 전형적인 선민의식에 따른 사고방식이다. 이에 나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미국 사회 내의 LGBTQ의 권리와 관련한 진보 vs 보수 진영 간의 극심한 대립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동성애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강성 개신교인들의 의견들도 끼어 있겠지만, 그보다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답시고 광범위한 발언 규제 및 문화 컨텐츠 영역에서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대한 압력 행위를 벌이는 것에 대한 찬반 갈등이 바로 진보/보수 진영 간의 극단적인 문화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 LGBTQ를 인정하는지 아닌지를 가르는 논쟁이 아니라, 과연 어디까지를 차별이고 혐오라고 볼 것이며, 어떠한 발언들을 처벌하고 규제할 것인지, 그렇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억압할 것인지, 과연 무엇이 도덕적/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영화와 드라마와 게임에는 필수적으로 흑인, 여성, 동양인, 장애인, 동성애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반드시 등장시켜야 하는지, 인어공주를 굳이 흑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실존 인물까지도 억지로 흑인으로 만들어 다큐를 찍어야 하는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성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교육을 할 것인지 등, 이 모든 민감한 사항들이 총 집약된 문화 전쟁이 바로 이 ‘PC주의’로부터 파생된 갈등이다.

이제 이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기성세대에게는 이 갈등이 낯설지 모르겠지만, 이미 한국도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 PC주의와 관련한 이념적 갈등이 온라인, 문화 컨텐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근 미래에, 한국 정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이나 북한을 대하는 입장에 따라 진보/보수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이 PC주의에 대해 가지는 입장에 따라 진보/보수가 나뉘는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 아니,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일어났다. 이를 대비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 먼저 뒤쳐질 것이며, 이 민감하고도 예리한 문화적 변동을 감지하지 못하는 쪽은 순식간에 늙고 느려 터진 집단으로 취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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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기준이든 잣대든 변하기 마련인데
    무조건 내 말이 옳으니까 찍어 누르고 입 닥치게 만드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다건너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리네요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2. 정말 많은걸 느끼고 생각도 좀 더 깊어진 기회가 되었으리라 글에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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