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견문기(곽승용)

작년 여름이었다.

미대사관 직원분들께 면접을 보게 된 것이. 미 국무부에서 진행하는 특정 프로그램의 대상자로 추천을 받아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미 국무부에서 각국의 젊은 정치인들을 초청하여 미국의 정치/사회/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미국의 정치/사회적 리더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의 프로그램으로, IVLP(International Visitors Leadership Program)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하여 오세훈 시장, 원희룡 장관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운 좋게도 그런 프로그램의 예비 대상자가 되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약 30분가량 진행된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내가 해왔던 정치활동 및 나 개인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보좌역으로 활동했던 것을 시작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경험, 그리고 대변인 활동을 했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고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이 다 끝난 후, 미대사관 보좌관님은 “최종 대상자 결정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니 오늘의 이 면접은 아예 없던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잊고 사시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신대로, 나는 이 일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올 해 1월, 최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나는, 미국에 있다. 총 프로그램의 기간은 3주 정도이며 이제 막 프로그램 스케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점이다.

나는 현재 나를 포함하여 총 5명의 한국 정치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총 5명의 인원 중 3명은 민주당 소속이고 2명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아마 국회 의석 수에 따라서 비례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미 국무부와 계약된 통역사 선생님 세 분을 더해 총 8명의 인원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개략적인 여정은, 워싱턴 D.C.에서 출발하여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와 아이오와주 디모인을 거쳐 지금은 텍사스주 달라스/포트워스에 와있다. 텍사스에서 일정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행선지인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내가 이 곳 미국에 방문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과 사진, 영상을 통해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 순서로, 첫 행선지인 워싱턴 D.C.에서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다.

우리는 워싱턴 D.C.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간단한 투어를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백악관이다. 흔히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백악관은 남문에서 바라본 것인데 우리는 백악관 건물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북문에서 백악관을 관람했다. 현지 가이드는 백악관의 유명한 괴담인 링컨 유령 괴담과 함께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백악관에 머물렀을 당시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처칠이 미국에 방문하여 백악관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 밤 중에 침실에서 링컨 대통령의 유령을 보았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알몸으로 뛰쳐나와 복도를 헤매던 중 당시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요즘에는 해외 정상이 미국을 방문할 시, 백악관에 머무르지 않고 백악관 맞은 편에 있는 호텔에서 머무른다고 한다. 얼마 전 다녀간 윤석열 대통령도 그 곳에서 머물렀다고.

<White House from the north gate, 북문에서 바라본 백악관>

백악관 옆에는 미국 재무부 건물이 있었는데 이 재무부 건물은 미국의 초창기 대통령 중 한 인물이(존 애덤스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백악관에 거주하는 동안 의사당이 보기 싫다고 하여 재무부 건물로 의사당이 보이지 않게 가려버리기 위해 백악관 옆에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백악관에서는 의사당이 보이지 않지만 반대로 의사당은 백악관보다 더 높은 고지대에 있어 백악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의회와의 마찰이 얼마나 심했으면 의사당이 보기 싫다고 건물로 가려버렸을까 싶다. 한국은 청와대도 용산 대통령실도 모두 국회의사당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The Treasury Department of U.S. 미국 재무부 건물>

 동상은 초대 재무부 장관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동상이다.

다음으로는 미 국회의사당을 둘러보았다. 마침 미국 경찰 관련 행사가 있어 많은 경찰 음악대들이 백파이프를 메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을 등지고 서면 호수와 함께 저 멀리 서있는 워싱턴 기념탑을 볼 수가 있다. 현재 국회의사당은 전면부를 보수공사 하고 있는 중이다.

<U.S. Capitol 미 의회 의사당>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링컨 기념관이다. 이 곳 링컨 기념관부터 기념관 앞 연못을 거쳐 워싱턴 기념탑이 있는 공원까지를 모두 합쳐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고 부른다. 기념관 계단을 타고 기념관 위로 올라가봤다.

<Lincoln Memorial, 링컨 기념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반대편을 바라보면 이렇게 연못과 함께 내셔널 몰 전경이 펼쳐진다. 이 몰을 가득 채운 군중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전 반전 시위, 인종차별 반대 집회같은 역사적 시위 및 연설들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5만명의 군중 앞에서 한 명연설인 ‘I HAVE A DREAM’도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킹 목사가 연설한 자리에는 킹 목사의 연설을 기념하기 위해 ‘I HAVE A DREAM’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계단을 타고 더 올라가면…

그 유명한 링컨 대통령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본 팀 버튼 판 혹성탈출에서 지구인이 갖은 고생을 통해 혹성을 탈출하여 지구에 겨우 복귀했는데 이 링컨 대통령 동상 자리에 유인원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이미 지구도 유인원에게 점령당한 상태인 것으로 마무리되는 혹성탈출의 엔딩 씬이 떠올랐다.

동상을 자세히 보면 링컨의 왼쪽 반신과 오른쪽 반신이 조금씩 다르게 생긴 것을 볼 수 있는데 왼쪽 발이 좀더 앞으로 나온 것과 한 손은 주먹을 쥐었지만 한 손은 조금 펴진 것 등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링컨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면과 강단 있고 뚝심 있는 모습을 모두 표현하기 위한 조각가의 의도라고. 동상을 바라보고 좌측으로는 링컨의 대표적인 연설인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벽에 새겨져 있다.

<Lincoln statue, 링컨 동상>

“국민(인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문구가 바로 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등장했다.

링컨 기념관에서 내려와 우리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쪽으로 갔다. 이 곳에도 꽤 많은 수의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는데 이 곳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동상을 볼 수 있었다.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동상>

동상은 한국 전쟁 당시 눈밭을 헤치며 나아가는 한 분대, 또는 소대 규모의 참전용사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다들 많이 지쳐보이는 자세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가 군대에서 그렇게 입기 싫어했던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행군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군대에서의 경험이 약간 오버랩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참전용사들의 용맹하고 영웅적인 전투 장면이 아닌 고단하고 외로운 행군의 모습을 동상으로 남긴 조각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다음으로는 마틴 루터 킹 기념관에 들렸다.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은 계획과 기금 모금 및 건설에 20년 이상의 시간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한 끝에 2011년에 최초로 대중에 공개되었다.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은 워싱턴 내셔널 몰 또는 그 근처에서 세워진 기념비 중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기념관이라고 한다.

기념 석상에는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절망의 산에서 나온 희망의 돌)”이라는 킹 목사의 연설문 중 일부가 쓰여있으며 석상은 이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되었다.

석상 주변으로 킹 목사의 연설문 중 유명한 구절들이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이후로는, 점심시간이 되어 각자 자유롭게 점심을 먹고 추가로 관람하고 싶은 곳들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어느 곳을 관람할까 고민하다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워싱턴에는 무료로 공개된 박물관이 많다. 주로 스미스소니언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이고 있는데 영국의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설립된 스미스소니언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박물관들이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은 미국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교육재단이다. 따라서, 스미스소니언 이름이 붙은 워싱턴의 박물관들은 모두 무료이다.

그 중, 나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로비에서부터 거대한 코끼리 모형이 서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동물 모형과 공룡 화석 모형들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렸을 적에 공룡들의 종류와 이름을 다 외우고 살 정도로 공룡을 좋아했는데 미국 아이들도 그런지 확실히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고 어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흡사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니 혹시 아이들과 함께 워싱턴에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려볼만 한 곳이다. 동물 모형 및 화석 외에도 광물, 보석과 관련한 전시관, 곤충 및 해양생물과 관련한 전시관들도 있다.

자연사 박물관을 너무 빨리 돌고 나왔는지 시간이 한참 남았길래 National Art Gallery(국립 미술관)에도 들렸다. 물론 이 곳도 공짜다.

워싱턴 내셔널 아트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이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이라고 한다. 미국에 있는 유일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라고. 미술에는 영 조예가 없어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지만 여튼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Ginevra de’ Benci, 1457~1520, Leonardo da Vinci>

이 외에도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사진으로 소개한다.

내셔널 아트 갤러리까지 돌고 나왔는데도 오후 5시에 예정되어 있던 세션까지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 이번에는 스미스소니언 초상화 박물관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스미스소니언 초상화 박물관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의외로 규모가 굉장히 컸다. 가운데가 광장으로 뚫려있는 ㅁ자 모양의 건물이 3~4층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다양한 초상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일 것이다. 조지 워싱턴부터 시작하여 에이브러햄 링컨, 루즈벨트, 아이젠하워 등을 거쳐 오바마와 트럼프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곳은 오바마 초상화 앞이었다. 오바마 초상과 같은 위치에 있지만 반대 방향으로 놓여진 트럼프 초상 앞에는 뭔가 사람들이 서서 관람하기를 눈치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더불어, 모든 역대 대통령 중 트럼프만이 초상화가 아닌 타임지에서 찍어준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어느 화가도 트럼프의 초상화를 그리기가 싫었던 것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트럼프는 미국 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지만, 현재 형사 기소된 상태로 한창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을 내년 3월에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그렇게 워싱턴 D.C. 관광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와 팀원들과 함께 간단한 소개 세션을 진행하고 잠이 들었다.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8시도 못되어 잠들었던 것 같다. 아, 미국은 해가 매우 늦게 진다. 저녁 9시까지도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는데 이와 관련한 얘기는 나중에 해보겠다.

오늘은 주로 관광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이어서 쓸 글들에서는 본격적으로 미국 행정부 부처 및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여 나눴던 회의와 관련한 얘기들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들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꽤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들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던졌는데, 공유가능한 부분까지는 공유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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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좋은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멋진 정치인으로 성자해 나가는 모습이 기대됩낟.
    멋지네요~~~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곽승용님의 글을 읽으면서 미국의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님께서 이야기 하신 모든 것들이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은 봤었던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이 많이 왜곡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 때문에 영화 팬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며, 그 영화의 흥행은 처참할 정도입니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원작 영화의 감동을 느꼈던 수 많은 팬들이 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 pc주의 정치(미국 민주당)를 한국에 가져올 수 없지만, 좋은 경험 하신 것을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는 미국 정치와 시스템적으로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치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은 미국정치와 닮아 있는 면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일본 정치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각국의 시스템을 잘 흡수하셔서 대한민국 청년의 정치를 이끌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 글도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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