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서 20·30세대의 지지율 이탈을 놓고 최근 호들갑이다.
“젊은 세대가 국민의힘에 힘을 보탠 것은 이준석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싫어서다.” 같은 한가한 분석이나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전술을 채택한 국민의힘은 이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싫어서 이탈하고 있다.”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원인을 분석하려다 보니 애초에 아무리 합리적인 체 진단해도 젊은 세대에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통계청마저 정권에 불리한 통계를 내지 못했던 일방적인 모습이 20·30세대가 싫어하던 모습이라면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하는 여당의 모습을 20·30세대가 좋아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이준석을 몰아내기 위해 지방선거 직후에 공작을 시작할 때부터 꾸준한 추세로 지난 1년 동안 지속되어온 현상이지만 지금까지 애써 “이준석 때문이야”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부정해 왔던 것이고, 이제 탓할 곳이 없어지니까 나름 진심으로 다급해진 것 같다. 그들의 다급함을 어엿비너겨 우선 몇 편에 나누어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각 편에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걸리는 시간만큼 씩 써 내려가려고 한다. 두서없을 수도 있지만 이해해달라.
산업화와 민주화의 엉덩이에 깔린 그들
지금 기성세대도 젊었을 때 윗세대가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그다지 안 좋아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기성세대가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마다 젊은 세대는 정치에서 멀어진다. 정치권에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자신들의 고루한 관성을 벗어나 젊은 세대가 관심 가질 수 있는 아젠다를 발굴하는 것이다.
아젠다 세팅이 잘못되어 고전했던 정당의 사례로 바른미래당이 있다. 상대적으로 젊었던 지지층이 유승민과 안철수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지만 결국 윗세대 입맛에 맞는 메뉴만 다루다가 큰 파급효과를 내지 못했다. 40·50 세대만 하더라도 지방에서 유학 오거나 상경해서 직장을 찾은 사람들이 수도권에서 각자의 지역적 연고 색채를 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왔지만, 수도권에 거주하는 20·30세대의 대부분은 지역적 색채가 옅고 지역감정이 약하다. 그런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이 초기에 영호남의 화합과 같은 가치를 내세웠으니 젊은 세대가 급속도로 실망했다.
현재 50·60세대는 민주화, 70대 이상은 산업화에 있어서 본인들의 역할과 자부심을 강하게 느낀다. 예전에 다 같이 못살던 시절에야 누가 딱히 이끌지 않아도 먹고사는 문제로 모두의 고민이 귀결되었으니 산업화가 자연스럽게 목표가 된 것이고,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해금의 시기가 왔기에 민주화가 자연스럽게 공통의 아젠다로 발달한 것이다. 산업화는 경제발전이라는 계량화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공인된 목표가 있었고, 민주화는 직선제의 쟁취라는 명시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세대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도 그런 거창한 목표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기십만 몇 단위 정도로는 뭉쳐있는 복수의 아젠다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무상급식에 인색하던 정당이 1,000원 아침밥에 숟가락을 얹는 이유는?

민주당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후보가 나오자 20·30세대에 대해서 자신하면서 “무상급식 100% 시행에 반대했던 오세훈이 그 급식의 수혜자였던 20·30세대에게 표를 받을 수 있겠는가?” 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보수정당에서 “1,000원짜리 아침 식사”에 꽂혀서 그걸로 20대를 공략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1,000원짜리 학식이 국민의힘의 성과라고 인식할 사람도 적을뿐더러 애초에 수혜 대상이 매우 적은 정책이다. 대학교에, 그것도 재정 여건이 괜찮은 서울의 대학들에 다니는 학생 외에는 수혜가 어렵다. 정부가 결정한 것은 7억 7,800만 원이었던 아침밥 지원 예산을 15억 8,8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는 것인데, 이런 수준의 ‘복지’로 20대의 지지율 상승을 노린다는 것은 매우 염치없는 행동이다.
시혜적 복지는 정치권에서 큰 쟁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흥미를 끌 만한 논쟁적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여건에 따라 복지혜택이나 급여가 생기고 말고 하는 것일 뿐, 이런 것이 술자리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재생산할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은 아니다. 아침밥이 1,000원인가의 문제는 전체 20·30중에서 소수의 고민이고, 일부 재정 상태가 좋은 수도권 사학 위주로 지원되기에 이런 급조된 아젠다로는 오히려 위화감이 형성될 수도 있다.
협박 정치의 종언
보수정당은 수십 년간 협박의 정치를 기반으로 표심에 호소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까지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적화통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단주의적 협박을 이야기했고,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경제가 폭망할 것이며, 전교조가 세상을 장악해서 아이들은 멍텅구리가 될 것이라는 저주의 언어로 두려움을 증폭시켜오는 것이 기본적인 선거전술이었다.
아직도 일정한 수의 국민들에게 이 협박 전술이 유효할지는 모르겠으나, 김대중 대통령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겪으면서 그들의 햇볕정책이나 통일정책이 보수의 생각과 이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화통일에 이르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은 것을 국민들은 경험했다. 진보가 집권하면 경제가 폭망한다더니 IMF와 서프브라임 위기는 실제 누구의 탓인가를 따지기 전에 시기적으로 보수정권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전교조가 교육하면 폭망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의 선전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이 협박 정치와의 결별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가 가지는 관점은 윗세대와 다를 것이다. 나는 김정은이 백두혈통을 강조한답시고 김여정과 백마를 타고 기록영화에 등장할 시점부터 김정은을 무서운 악당보다는 웃긴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북한이 희화화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안보 위기론은 젊은 세대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들릴 것이다.
한국전쟁의 아픔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산업화 시기의 초고도 성장을 느껴본, 그리고 높은 학구열 속에 교육을 통한 계급과 신분 상승에 올인한 세대는 이제 절대 수가 줄어들고 있고, 그들과 다르게 미래세대는 국민의힘을 찍지 않으면 그런 것들을 향유할 수 없다는 협박에 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정당이 내는 메시지도 무한하게 국민들에게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면의 윗란을 장식하는 정도만 전달된다. 그런데 그 지분의 상당수를 종북 특위 설치, 간첩 잡는다는 이야기로 도배해놓는 전략으로 과연 2030의 표를 노린다고 할 수 있을까?
MZ세대라는 모호한 구분법의 허상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MZ라는 표현부터 버려야 한다. 소위 MZ세대라고 그들이 구분 지어 놓은 울타리가 정말 1981년생부터 2012년생까지를 포괄해서 우대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나이대를 구분 짓고 아무것도 자신들이 나누어주기 싫은 나머지 영역을 설정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1981년과 2012년생을 한 덩어리에 묶어놓는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의아한 것이다. 1981년생이 30살 정도에 아이를 낳았으면 부모와 자녀가 같이 MZ세대로 엮이는 웃픈 상황이다. 하루빨리 MZ세대라는 이 우스꽝스러운 용어로부터의 절연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유권자의 절반가량을 포괄하는 이 단어는 그냥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양대 세력을 뺀 나머지를 통으로 묶기 위한 단위 이상의 의미가 없다.
1981년생은 스타크래프트를 즐긴 세대이고, 2012년생은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고 있는 세대이다. 남진의 데뷔 연도와 HOT과의 데뷔 연도만큼의 격차가 벌어진 두 연령대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단순히 MZ라는 용어만으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남진, 김연경과 같이 사진을 찍는 이벤트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누구를 선봉에 내세울 것인가?
이준석이 박근혜 키즈로 불리며 젊은 세대에게 조롱당하던 것이 고작 3년 전 까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이준석이 누리던 상당한 정치에서의 지위는 실제로 박근혜라는 거물 정치인이 얹어준 권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세대가 고개를 들어 이준석을 바라보면, 그가 가진 학벌이나 여러 가지 특별한 지점들을 차치하고 보면 박근혜라는 거물 정치인의 후광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준석이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뒤로 가능할 때마다 꾸준히 다른 사람의 기회를 열어젖히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할말은 했고, 인사권이 생겼을 때는 그것을 공정하게 행사하기 위해 노력했고, 새로운 사람이 연줄 없이도 진입할 수 있도록 토론배틀과 정책공모전에 의존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면서, 박근혜 정부 때부터 어떤 월급 받는 임명직도 맡지 않으면서 버텨왔던 세월이 적어도 동년배에게서는 이준석을 일관성있는 스피커로 만들어준 것이다.
3당 합당에 저항하고 몇 번 선거에 떨어져도 갈 길을 가겠다며 바른 소리를 한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부채를 안겨준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올곧게 하다가 고생을 한 사람의 정치 행보에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을 드러내 보이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을 시기의 20·30에게 호감을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판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고, 사람들은 회사, 학교 등에서 하는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정치판에서도 본다. 누군가를 집단린치 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학교 시절 우리가 비겁하게 지나쳤던 어느 학생을 왕따시키던 소위 “잘나간다는 애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회사에서 사장님의 오른팔을 자처하며 완장을 찬 어느 사장님 측 핵심 관계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겉으로는 받들지만, 안으로는 언젠가는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기대를 하고 하루하루 출근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려낸 시나리오처럼, 결국 대중이 정치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방법은 그들의 작은 왕국이 깨어지고, 완장을 찼던 사람들이 대가를 치를 때 모습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그 카타르시스를 대중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 그리고 윤핵관 주니어들을 앞줄에서 빼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안 가면 tvN 지니어스 시즌 2, 9화를 보면 된다.
PC담론을 둘러싼 온도차
그렇다면 젊은 세대가 어떤 담론에 꽂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5공 시절에 불타오르던 민주화의 열망이 3S 정책 따위로 잦아들지 않았던 것처럼 대중은 뭐에 꽂히면 그에 비해 덜 중요한 다른 이슈로 뭔가를 덮고 가긴 어렵다. 젊은 세대가 최근에 꽂혀있는 주제는 PC 논쟁이다. Personal Computer를 뜻하는 PC가 떠오른다면 이 단락은 세심하게 읽어야 할 듯 하다. PC 논쟁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이다.
정치적 올바름 논쟁은 언어사용이나 행동에 있어서 성적, 종교적, 인종적 차별 등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교정적 운동”에 대한 찬반 논쟁이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최근 저출산이라는 단어와 저출생이라는 단어가 병용되어 쓰이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여성에게 뭔가 책임이 있는 것처럼 쓰이기 때문에 성 중립적인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것이다. 저출산이라는 세글자 속에 담긴, 인구구조 피라미드의 붕괴에 대한 대책이 더 시급한데도, PC에 예민한 사람들이 용어에 대한 논쟁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것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는 것이다.
윗세대는 모 논객이 하고 다니는 것처럼 “김정은 개새끼 해봐” 와 같은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 또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런 용어에 대한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보통 PC 논쟁에서 “교정적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의 입장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때로는 선민의식과 자의식 과잉 속에서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지점이 바로 논쟁의 지점이 되는 것이다. 어떤 단어를 정해 그것을 쓰는 사람이 지식인이고, 그것을 쓰지 않는 사람이 모자란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성이 나올 때 사람들은 반발한다.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이라고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子자 가 아들을 뜻하니 성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포궁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것인데, 여기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우선 이것이 크게 의미 없는 논쟁인데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나, 본인은 성차별적인 의도로 사용한 용어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흑어공주”논쟁을 알고 있는가? 찾아보자. “프로불편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가? 찾아보자.
PC논쟁이 복어요리이다.
예전에 나는 젠더논쟁이 한창일 당시 이것은 복어요리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젠더논쟁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싸잡기를 회피하면서 혐오 논쟁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보수정치인의 대부분은 싸잡기를 회피하기는커녕 평생을 싸잡는 정치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당장 젊은 세대를 MZ세대라고 싸잡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상황에서 팔팔 뛰는 복어를 제독해 낼 만한 실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보 진영에서는 PC 논쟁에 참여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혐오”이다. 무슨 말만 하면 혐오 논란으로 몰아가는 것이 유치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 종북”하는 문화의 정반대 지점에 있으면서 닮은 것이 “너 혐오”라는 방식의 대응이다.
혐오는 어떤 복수집단의 특성을 도출해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정의에 따르면 “나는 장애인이 싫어”는 혐오이고, “나는 전장연이 지하철을 막아 세우고 시위하는 것은 비문명적이라고 생각한다”는 혐오가 아니다. 이 차이를 구분해 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PC 논쟁에 개입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진중권과 이준석이 뒤끝없이 논쟁할 수 있는 이유?
주변 사람들은 나와 진중권 교수가 하는 논쟁이 감정선을 자극하는 지점까지 흐르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우리는 PC 논쟁에서 각자 수직선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줄다리기하고 있었다.
내가 진중권 교수랑 아무리 설전을 벌인다고 해도 내가 그를 압수 수색을 하거나 방송에서 자르도록 여당 대표로서 압력을 가하는 위해를 가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진중권 교수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치열하게 PC 주의의 한 스펙트럼을 설파했을 뿐, 그 안에서 논점 일탈은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격론이, 때로는 티키타카가 되는 것이다. 권투라는 경기는 서로 글러브를 끼고 있기만 하면 항상 성립한다. 정신이 나가서 경기중에 칼을 꺼내 드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리 권투가 격렬해져도, 경기가 끝나면 다시 다음 경기에서 만날 수 있다.
PC주의 논쟁에서 국민의힘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젠더이슈나 전장연 논쟁에서 외과 수술적으로 PC논쟁을 다루던 모습과 현재처럼 노조를 죄악시하고 다 때려잡자고 하거나, 전라도를 싸잡아 비하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젊은 층은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2030과 관련된 접근을 할 때 PC 논쟁의 교두보를 잃은 것은 아무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가장 뼈아픈 지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PC 주의 논쟁은 지금의 국민의힘이 다루기에는 매우 위험한 지점이고, 이것을 세세하게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정치인은 현 지도부에 없어 보인다. 노조는 다 나쁜 사람들이니 때려잡아야 한다고 싸잡고, 특정 지역이나 종교를 싸잡아서 옹호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과도하나 가지고 복어 독을 제독하겠다고 무리하는 모습에 가깝다.
PC논쟁을 보수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정치인들이 PC 논쟁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꺼리거나 방관했을 때 이 대립은 격렬해지고, 타인의 용어 사용과 삶의 방식을 제어하려고 드는 행동주의적 PC 주의자와 용어 사용과 인식의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주의자의 대립은 거세진다. 복어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면 자유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의 우위가 사회 전반에서 이어질 수 있고, 복어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무식하게 혐오의 언어로 이것을 다루기 시작하면 그 반작용으로 진보의 우위가 태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또 다른 반작용으로 대안우파라고 하는 극우적 성향의 보수가 태동할 수도 있다.
기성세대는 20·30세대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개성을 드러내는 형태로 진화해나갈 것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 주목해야 한다.
DJ DOC가 젓가락질을 지적하지 말라고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노래가 당시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었던 것처럼, 자유주의적 경향성을 띠는 젊은 세대는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고,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는 앞장서는 문화가 있다. 누군가가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왜 서양 귀신을 찾는 명절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냐고 보수층이 많은 단톡방에서 글을 돌렸지만, 애초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책을 보고 똑같은 모습의 상을 차려놓고 똑같은 방식으로 절을 하고 가족이라는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둘러앉는 추석보다는 젊은 세대가 개성을 드러내고 무한한 자유도를 가질 수 있는 핼러윈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자명하지 않을까. 당신들이 설정한 안보, 경제, 교육의 협박정치를 벗어나 자신들의 의제를 논의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결국 2030 젊은 세대의 내년 총선 표심은 PC 논쟁에서 파생된 많은 주제에 대해 정당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갈라질 것이다. 이준석이 미래에 대해서 섣부른 예언을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미 지난 대선과 지선 시기를 지배했던 젠더담론이라는 것이 PC 논쟁의 부분집합이었다. 대선의 승부처는 멸콩같은 시대 지난 아젠다가 아니었다.
윌리엄 깁슨의 유명한 말로 1편을 마친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
William Gibson
39 comments
그 여연 부원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쓴 신동아 칼럼 ㅋㅋ 심지어 2030 남녀 득표율 수치마저 틀렸더군요. 수치를 왜곡수준을 넘어 날조까지 해가면서까지 답정너 궤변을 싸지르면서까지 윗분들께 충성맹세를 하고 싶은 이유야 뭐 뻔하지만요.
든든합니다.
긴글을 읽으면서도 단하나의 막힘이 없네요 머릿속에는 있지만 풀어내지못했던 이야기들이 적혀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먼저온 미래가 아닌 이미 와있지만 널리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열심히 전해야겠네요
누구냐? 넌
4호선에서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넌
이대표님 덕분에 매번 좋은 공부를 하고있습니다
먼저온미래 거부할 수없는 미래대통령 이준석을 응원합니다
오래 지치지마시고 더 넓은 마음으로 국민을 위해 일해주십시오 화이팅!
속 시원함 & 든든함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권투글러브를 끼고 룰 하에 경기하는 논쟁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링 위에 올라가서 커터칼 휘두루는 양상이 현실로도 나오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규제에 대해 논의 해봐야할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mz거릴게 아니라, 진심어린 반성, 왜 지지율이 떨어졌으며, 왜 신뢰도가 떨어졌는 지에 대한 분석없이는 어떤 좋은 정책도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물론 청년들에게 많은 돈을 뿌리겠다 한다면 조금 혹하긴 할 거 같습니다만, 그게 가능했더라면 진작에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가게의 홍보와 반대로 싸구려 품질의 상품을 판매하려 해놓고선 실망해서 발길을 뚝 끊었더니, 그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더 좋은 상품을 내놓을 생각은 안하고 기존상품을 할인해주겠다며 대단한 혜택을 주는 것인냥 유세떨면 더 열받겠지요. 괘씸할 겁니다. 이상한 상품을 전부 폐기하고 좋은 상품으로 교체하는 것은 손해비용이 크니, 할인해주는 것으로 손님을 잡아보겠다는 것은 손님입장에선 “니가 덜 망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10,000원짜리 상품을 1,000원으로 내릴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면 ‘뭐라도’해야 되는데 싼값으로 예전의 명성을 찾으려는 가게를 누가 좋게 봐주겠습니까?
그런 국민의힘의 태도가 반감을 일으키는 겁니다. 청년들은 정치인들한테, 대통령한테 착하게 군다고 지지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좋은 상품’을 내놓으면 되는 겁니다.
민심을 읽는게 아니라 인심을 쓰는 정책들을 늘어놓고 민주당과 경쟁을 할게 아니라,
그런 정략적이고 시혜적 인심정치가 통하지 않는 사회로 성장시키는게 보수의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국민의힘의 쉐도우복싱은 이준석을 향해 있다가, 경기당일 엉뚱한 적이 나타나 당황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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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었습니다. 대표님의 아젠다 설정과 논거에서 많이 배웁니다.
유능한 자유주의자가 사회 담론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정치,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이글을 지하철에서? ㅎㅎ
대단합니다 내공이
글을 다 읽으니 역시나 이준석을 사랑할 수밖에 없네요.
서울 독자모임때 꼭 참석하고 싶네요.
보수의 미래 이준석!
전 대표님의 모든 언행이나 방식에대해 전부 공감하진않지만 전 대표님이 가시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미래는 우리 눈앞에 와있고 국제정세는 변해가고 있는와중에 우리는 한번더 거듭나야할 미래앞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외면하고 쉬쉬하며 협박하고 억지로 끌고 나간다면, 그 폭탄은 터져버릴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세대와 우리 자식세대에게 번져나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대표님의 싸움을 응원합니다.
“복어요리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자가 PC논쟁을 다뤄야 진보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하고 멋진 논리 입니다.
저는 이번 전당대회 결과가 국힘 책임 당원 구성 50~70대가 75% 20~40대 25%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즉 사회는 이미 미래로 가고 있는데 정당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절대 다수인 상황입니다.
이것을 바꿀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식적인 20~40대가 정당에 더많이 가입해서 다음에는 최소한 50~70대와 20~40대의 책임당원 비율이 5:5 이상이 되는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종교가 아니라 상식으로 돌아가기 원하시는분들은 더이상 방관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이런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국힘이든 민주당이든 가입하셔서 합니다. 정당을 상식적인 다수가 모인곳으로 바꿔갈수록 미래로 가는 시간은 더 빨라질겁니다.
50~70대 어르신들이 이루신 산업화와 민주화에 경의와 존경을 표하지만 그렇다고해서 20~40대의 미래까지도 여전히 그분들이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20~40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해야 합니다.
다들 정당에 가입하시고 다음에는 복어요리를 할 수 있는분들에게 표를 줍시다. 밖에서 비웃으시는 분들도 응원하고 지지하시는 분들도 방관하는것은 같습니다.
어느 정당이라도 가입해서 모든정당이 20~40의 의견이 주류로 작동할 때 비로서 칼을 들지않고 권투 글로브 차고 링에 오를 정치인분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수 있을겁니다.
1000원 학식에 대해서는 이런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000원 학식은 재정 여건이 괜찮은 서울의 대학들에서나 추진할 수 있을 정책인데, 그 정책(혜택)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인가의 문제는 또 다릅니다. 1) 해당 대학에 재학하고 있으면서 2) 기숙사나 자취 등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서울 소재 대학에 통학하기 위해서 1~2시간을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아침밥 먹겠다고 그 시간까지 학교에 (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갈 이유가 없거든요. 졸리니까 그 시간에(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집에서 아침 먹는 시간까지 버리고) 잠을 더 자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학생의 아침식사’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대학생의 주거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가 됩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저는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 때 방향성만 명확하게 설정해도 그 행보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면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가서 단순히 “1000원 학식 지원 확대하겠다” 같은 말을 하니까 ‘뭐 하러 여기 왔냐’, ‘당신들 때문에 그날 6명의 학생은 아침을 먹지 못했다’ 같은 반응이 나오죠. 당연히 지원 줄이겠다고 말하려고 아침 먹으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니 너무 뻔하고 의미 없는 방향성만 설정하고 간 셈이 됩니다.
어떤 정치 활동을 할 때 그 목적을 무엇으로 잡고 설명할 것인가만 잘 고민해도 훨씬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텐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이 놀라웠습니다.
2030이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건 2030이 바보도 아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전국을 돌며 유세하고
노력한 이준석이 개같이 버려지는걸 다 보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2030은 그냥 도구일뿐 애초에 같은편인 아니였던 거지요
보수정당이 왜 망해야 하는지 본인이 증명했는데
그건 왜 말하지 않습니까
정치가 아무리 정책이 중요하고 pc니 페미니 하면 일부는 좋아하겠지만 신뢰가 사라진 이상 2030은 커녕 4090도 국민의힘이나 윤석열은
아무도 안믿습니다
검수완박 여론온도차가 뒤바뀐것만 봐도 지금 국힘은 내년 총선에서 분해당할일만 남은거지요
파란나라가 코앞입니다
윤석열의 국민의힘 멸망작전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현재입니다
pc 주의 진짜 공감 갑니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토론해야지.
진짜 MZ MZ 하면서 싸 잡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20대도 30대로 세대가 다름.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를 제발 싸 잡아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보수는 제발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아 달라. 1000원 급식? 장난하심?
참 대단하다 사회를 보는 시선과 매서움이 얼마나 사랑하면 이렇게 될까 나보다 젊지만 존경합니다 그열정을
답답해서 한마디 더하자면 난 대다수 앵무새들처럼 공감합니다 글적으로 여기온건 아니다.
유승민을 지지한지 오래되었고 그의 정치적 판단이나 식견을 지금도 지지하지만
유승민이나 이준석이나 둘다 문제점은
유승민은 대구에서 못벗어나서
이준석은 보수정당에서 못벗어나서
똑같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
본인들이 노무현같은 가시밭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걸까?
가시밭길은 맞지만 정치적 승부를 못한다는것에서 완전히 다르다
내년 총선에서 지고나면 과연 이준석에게 기회가 올까?
유승민이 조금만 더 수도권으로 올라왔더라면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처럼 내부컷을 당했을까? 아니 이준석이 차라리 유승민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왜 추대는 못했나? 그럴명분은 충분히 있었다
본인도 스스로 본인의 패착을 복기하길 바란다.
정권 초기에 대통령이랑 각을세워 본인에게 이득이 온게 무엇인지
도리어 태극기세력이 득세하게 만든건 본인 아집은 아니였는지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 복기없이는 미래는 없다.
국힘이 아니라 이준석 본인도 성찰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난 진심으로 바른정당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정말로 유승민과 이준석에게 충고한다
상대가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면 이유를 만들어줘라
아니라면 상대도 죽을수 있다는걸 확실히 보여줘라
윤석열이 일본에 호구외교한거처럼 국민의힘으로 운신의 폭을 좁히지 마라. 여차하면 밖에 나가서 김종인과 제 3지대는 언제든 만들수 있다는걸 위력으로 사용하란거다.
어차피 이준석이 난 지금의 태극기에 지지받을일도 같은길을 갈 일도 없다고 보기에 미련하게 시기만 기다리는것이 답답하다
이리저리 쓴소리가 많았지만
정책 물론 중요하고 정치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일단 힘을 얻으려면 이준석과 유승민에겐 모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좋은 내용인데 블로그에 올리니 읽는 사람 숫자가 많지 않은게 아쉽습니다. 트위터등을 활용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공감합니다.
앱으로 플랫폼이 개발되어 좀더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나눠도 좋을듯 합니다.
서로 리스펙하고 인격적인 존중을 바탕으로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들이 가득차야 나라가 발전할텐데 현재 나라꼬라지는 자기견해를 굽히면 자기가 죽는다는 한심하기 짝이없는 마인드로 꽉차있는 인간들이 즐비해있는 상황입니다. 견해 굽혀도 죽지않는데, 죽기살기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에 대해서…타당하고 납득할만한 합리적 근거에 준거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들이 있다면 경청하는 나라 토대가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이걸 전첱 타고 다니는 시간에 적었다고.. 대단하다
거부할 수 없는 작은DJ, MH
언젠가 내 아이의 대통을 거부할 수 없다!
지금의 어려움과 탄압은 밑거름이 되어, 피와 살이 되고 정치의 속성?이 세력화임을 이미 간파하고 부디 지금처럼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도 변하고 보수정당도 변해야 한다. 근데 문제를 다 알려줘도 해결 할 이대표같은사람이 없으니,,,, 일단 이준석대표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시면서 보수의 영역을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정치가는 결국 설득할수 있는 힘과 지지층의 두께입니다. 그리고 감히 이글에대한 피드백을 하자면 좀덜 설명적인 예시와 좀더 짧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수 있을듯 합니다~~~
공감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그거 다 알고 여러가지 하려 하고있으니 지켜봐주셔요.
[이준석 의견의 반반 무많이 의견, 즉, 찬동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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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젠더 갈등 때문에 지지도 격차가 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면서 평가 절하 했다.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 병역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허허허, 재밌는 이슈네요.”라고 말하는 것과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이 여성병역문제 청원 사건 이후, 갑자기 국민청원 답변 요구치는 20만이 되었다.
2019.2.18.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현안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조직화 된 여성계의 반발과 한겨례 등 일부 언론들의 집중 포화를 받고 공중 분해 되고 만다.
사실 이 보고서는 매우 평범한 수준의 보고서 일뿐이었다. 혁신적이냐라고 묻는 다면 너무나도 평이한 보고서에 불과했다고 당당하게 평가절하 할수 있다. 젠더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 라는 것에 “통계 사용”을 조심하고, 정치적 언어를 사용할 때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자고 결론 낼 정도로, 적극적이기보단 문제에서 도망치라라는 겁쟁이 보고서였다.
그런데도 이 보고서는 집단적 린치 속에 사라져 갔다가 2년후 2021.4.7. 재보궐 선거 이후 재조명 되었다.
2019.10월말 더불어민주당 장종화 대변인은 ‘82년생 김지영’ 영화에 대하여 차별을 하나하나 없애 나가자며 당신과 나는 서로 죽도록 미워하자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조심스러운 겁쟁이 논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겁쟁이 논평에 대하여 같은 당 대학생위원장은 “처참하다, 가소롭다”라고 때려 됐다. 정의당 역시 “암울하다.”라고 비난에 가세했다. 국회내 페미 모임이라는 ‘국회페미’역시 장종화 대변인을 비난했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장종화 대변인의 논평을 취소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집권 여당 민주당 장종화 대변인은 왜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냐라고 묻는다면, 조직화 되고 자금력있는 기성 조직과 언론은 무서웠고 자신들의 보고서나 논평에 힘을 실어줄 대중들의 반응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반쯤 적중했고, 겁쟁이처럼 행동했는데도 그들은 린치 당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이런 사태를 이를 갈며 지켜보고 있었고 여기에 기어코 가장 효과적인 철퇴를 날렸다. 바로 2021.4.7. 재보궐 선거에서의 압도적인 심판이 그 것이었다. 아마 투표장에 나간 젊은 세대마저도 이 약속되지 않은 분노의 표현에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이 스스로의 놀라움은 이들이 드디어 우리 사회의 의제에 스스로 목소리를 낼수 있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동력은 정권교체와 지방정권교체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과 그로 인한 반감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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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라고 묻는다. 나 역시 정부와 여당이 무슨 답변을 내놓을지 잘 모르겠다.
내놓을 답변을 기대한다라는 밖에 못하겠다.
여기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면 다음 철퇴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게 내려쳐질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책임자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다. 더 이상 문재인이 대통령이 아니지 않는가? 이미 조짐이 있지 않은가? 부디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놨던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벤치마킹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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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였다. 지지리도 못살던 시대에 우리도 잘 살아보자라는 하나의 목표 창공에 빛나는 별이 있던 시대였고, 그 별이 있는 창공을 향해 민중을 이끄는 영웅이 존재하는 시대였고,(그 시기를 다룬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도 있다.)그 영웅과 동참하면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시기 였다.
민주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자유라는 가치, 인권이라는 가치,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상징을 향하여 나가는 장대한 드라마는 감동이 몰아쳐오는 위대한 서사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서사시의 시대에 지도자들은 위대한 영웅들이었고 그 영웅을 뒤따르던 모든 이들 역시 영웅의 일정에 동참한 하나하나의 주인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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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거대한 서사였던 산업화와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어 이제는 그 것이 더 이상의 우리 사회의 거대 서사로 통용되기 어려운 시절에 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20대, 30대 일 것이다.
마치 독재자의 딜레마와 같다. 후진국의 독재자는 경제 발전을 이상으로 집권하고 독재 정치를 펴지만, 경제 발전의 달성되면 그 명분이 사라지는 것 말이다.(달성되지 못하면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명분이 소멸한다.)
거대 서사가 사라진 시대에는 자그마한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그렇지만 개인에게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모 노래의 가사처럼 “중요한 건 평화, 자유, 사랑, My Life”가 된 시대, 정확하게 중요한 건 나의 삶의 평화, 나의 자유, 나의 사랑, My Life 가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거대 서사가 사라진 2030이다.
서사시의 시대에 영웅들과 위대한 여정을 함께 했던 산업화라는 혹은 민주화라는 아르고호의 선원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 세대 “아르고나우타이”들이 눈에는 한 없이 철없고, 이기적인 세대겠지만, 이것은 이 세대의 탓이 아니란 거다. 오히려 조셉 캡벨의 말처럼 전 세대 영웅들의 위대한 여정과 그 귀환으로 우리 사회에 가져온 위대한 유산 산업화와 민주화 덕에 우리 세대가 중요한 건 나의 삶의 평화, 나의 자유, 나의 사랑, My Life 가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단순히 2030을 산업화와 민주화 엉덩이에 깔렸다고만 표현하는 것은 너무 하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 그래서 거인 볼수 없었던 가치를 바라 볼 수 있고, 또 거인이 밟고 일어서야 했던 땅바닥의 온갖 뾰족한 돌을 피할 수 있었던 그런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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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페이스북에 2018.8.19. 이준석을 지지 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 이유는 이준석의 생각에는 공감하나 이준석과 박근혜를 분리해서 볼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가 박근혜 키즈라는 이름으로 오염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가 옳은 메시지를 내는 것은 오히려 메시지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참 편협하기도 할수 있는데, 이준석이 정치판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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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서사가 사라진 시대,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그 것이 그 개인에겐 무척이나 소중한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과 PC주의는 상당 부분 맞지 않는 지점이 있다.
PC주의는 거대 서사 담론도 아닌 것이 거대 서사 담론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사회 담론이 지배자인 자본가와 착취 대상인 노동자의 모습으로 거대 담론을 그려냈다면 PC주의는 착취자인 다수자 (혹은 남성)과 착취 대상인 소수자 (혹은 여성)으로 그 외형만은 거대 담론인 가짜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낸다.
이 가짜 거대 담론은 개인에게 소중한 작은 가치 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서사를 가진 영화, 드라마가 나오면 여기에 정의의 거대 담론을 들이대며 너희들의 생각 없는 그 혐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라고 외친다.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가 그랬다. 예전엔 스스로 짧은 치마를 입기 위해 여성들이 치마에 가져다 대는 잣대에 저항했다면, 지금은 다른 여성들이 직업적 아이돌로 자신의 예술적, 음악적 가치를 들어내기 위한 복장을 탄압하기 위해 그녀들의 치마에 잣대를 들이 대기 일상이다. 여성가족부가 그랬다.
이런 행위들은 게임, 웹툰 등 상당한 부분에서 동시 다발 적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변신하는 전사(Social Justice Warrior)들이며, 장대한 노래가 깔리는 변신이 끝난 뒤에는 이렇게 외친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거대 담론이 개인을 짓밟는 것은 위대한 정의 구현으로 포장된다.
이 문화적인 측면도 거대하지만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사법적 측면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위협하고, 가산점, 할당제 등의 이름으로 나의 삶의 평화, 나의 자유, 나의 사랑, My Life라는 자그마하지만 그 개인에겐 소중한 가치를 짓밟았다는 것 또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항을 포기 하기 일수 였다. 왜? 이미 조직화되고 자금력 있는 이 PC주의 조직들이 무서우니까 말이다. 앞서 말한 무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조차도 겁쟁이 보고서 밖에 낼수 없는, 민주당 대변인 조차 겁쟁이 논평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그 마저도 철저하게 짓밟히는 상황에서 그 누가 나설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아니, 그 이전에 대통령 후보들이 “나는 페미니즘 대통령”이다라고 신앙 고백하는 그 분위기 속에서 그 누가 나설 수 있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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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참 PC 주의 이야기가 나올 때, 주변에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 발언의 요지는 대강 이정도 였다. “우리 사회에 PC 주의는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공부해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래서 정답이 뭐냐 라고 물었다. 내 답은 전형적인 비겁한 위선자, 겁쟁이 대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PC주의는 상당히 맹점, 독소적인 주장을 가진 사상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는게 정치적 이득이 될지 의문이다. 공개적으로 말하기 무섭다. 매장 당하는 건 순식간일 수 있다.”
아마 대다수의 선택은 이런 위선적이고 비겁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불구덩이 속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뛰어드는 미친 짓이었으니까.
근데 거기에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뛰어드는 희대의 미친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준석이었다! 이준석이 PC주의자들과 대담하고 토론해왔던 역사는 길기에 생략하자. 중요한 것은 이준석이 정치권에서는 거의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뛰어드는 희대의 용기 있는 미친 짓을 감행했고 살아 돌아 왔다는 것이다.
이준석이 자주 쓰는 복어 요리로 비유하자면, 이준석은 최초로 복어 요리를 먹고 죽지 않은 인간이다. 세상에 수많은 먹을 것이 있는데 하필이면 독이 있는 복어를 먹어댄 미친 놈들 밈이 커뮤니티에 퍼진바 있는데, 바로 이준석이 하필이면 독이 있는 복어를 미친 놈처럼 먹고 살아 돌아 온 거의 최초의 인간이란 거이다.
우리는 마젤란 탐험대를 최초의 세계를 일주한 탐험대로 기억하고 , 아문센을 지구의 두 극점을 모두 최초로 정복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세계를 일주한 탐험대는 많고 두 극점을 정복한 인간은 맞지만 우리가 마젤란과 아문센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주 예전에 광고 카피에 그 답이 있다. “지금 내가 걸은 그 (눈) 길이, 나중에 걸어 올 사람에겐 길이 된다.”
복어를 먹고 살아 돌아온 인간이 있다면, 그 이후부터는 그 인간이 먹은 복어 부위만을 먹으면 될 일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보스를 깰 수 있는 공략이 드디어 입수된 것이다.
나 역시 그 용기에 감탄하여 이준석을 지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철회 한 것이다. 이준석의 생각이 옳다면 이준석에 대해 지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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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은 복어 요리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정부와 여당에 있냐고 묻지만 이준석은 너무 했다. 그 정도로 정권과 여당의 인재풀이 형편 없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간절한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준석이 모르는 어딘가에 복어 요리 명장이 있을 거라 믿는다. 아니, 정말 간절히 믿고 싶다.
그러나 이준석이 모르는 어딘가의 복어 요리 명장이 등장하더라도 이준석만큼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2030이 이준석에게 보내는 지지는 이준석의 복어 요리가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복어 요리에 꺽이지 않았던 마음, 그 용기에 보내는 지지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히 말 하건데, 지금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불 구덩이에 뛰어드는 미친놈이 있는가? 목숨을 앗아갈 복어 요리에 최초로 손 대는 용기 있는 자가 있냐고 묻는 다면 복어 요리 명장보다 더 찾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여당이 아닌가 싶다.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왜 짤렸는지 모르겠지만 소제목들이 짤려서 따로 달아 봅니다.
[이준석 의견의 반반 무많이 의견, 즉, 찬동과 비판]
1. 젊은 세대가 국민의힘에 힘을 보탠 것은 문재인 정부가 싫다라는 부분도 있다.
2.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라고 주권자들은 묻는다.
3.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본질적으로 같다. 서사시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4. 별의 사라진 시대를 사는 2030, 자그마한 가치에 집중하는 사람들
5. 누구를 선봉에 내세울 것인가?를 묻기 전에 선행 조건은 없는가?
6. 유사하게 만들어진 가짜 거대 담론 PC주의
7. 이준석의 가치는 복어 요리 명장이 아니라, 처음으로 복어를 먹고 죽지 않은 “미친” 인간
8. 이준석에 보내는 신뢰는 복어 요리 실력이 아니라, 복어 요리에 꺽이지 않은 마음
2030 (특히 남성) 이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냈던 요인에 이준석 전 대표님 공도 부정할 순 없겠으나 미미 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도 자기 공이 크다는 식으로 책이나 언론등에서 표현을 하고 계신데 실제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나온이후로 2030의 지지율이 급격히 뛰었다고 봅니다. 데이터가 그걸 보여주고요.
1. 여성가족부 폐지는 원래 홍준표, 유승민이 먼저 들고 나온 공약이다.
2. 이준석은 이 공약이 당내에서 활발히 논의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통일부도 끌어 들이며 불을 붙였다.
3. 이 와중에고 윤석열 당시 후보의 공약은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 하겠다 정도의 입장이었다.
4. 이준석과 갈등을 겪다가
5. 이준석이 합류한 다음날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글자가 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6. 대중들은 양성평등가족부 개편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로 공약이 바뀐건 후보가 이준석의 노선을 존중하겠다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7. 그 이후 A.I 윤석열이라든가, 59쇼츠 라든가 홍보 수단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넘 공감합니다 글이 힘이있고 아름답네요
지금세상에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사람이 먹을게 너무 많아 굳이 복어를 쳐다보려고도 하지않고 복어가 먹는음식이라는 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않고 알려주어도 회피하는 것을 국힘 전당대회를보며 느꼈습니다 제가 이준석을 지지하는 이유는 자신이 피를 흘리면서 끊임없이 방관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끈기와 노력 열정때문입니다
대표님, 다 좋은데 지금 이 플랫폼은 아닌거 같습니다.
솔직히 2000년다 초반 스타일이에요.
본문에도 남진 hot bts 격차를 말씀하셨듯이,
현재로서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대 대표님은 기존 정치 유튜버의 극우적 행동 때문에 항상 유튜버를 비판하셨던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메이저 방송 언론 인터뷰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숏박스, 피식대학이나 곽튜브 처럼 영향력 있는 유튜브 플랫폼에서 의견 전달을 할 수 있어야합다. 이 블로그는 죄송하지만 영향력도 약하고 시대정신도 뒤쳐집니다. 냉정하지만 팬으로서 의견 남깁니다.
공감됩니다 윤핵관이
극우 유튜브를 동원하여 극우당원들과 국힘당원들이
이준석을 몰아내게한 시발점이 된거죠
극우 유명 유튜브에서 이준석을 몹쓸인간으로 세뇌시킨거죠
제가봤을땐 신당이 결국답입니다… 예전에 국힘을 소금물에 비유하면서 물을 조금씩 타면된다고하셨죠?? 제가봤을땐 거기는 소금물이아니라 썩은물이에요 민주당도 그렇고 단순히 정치인이 잘못돼있으면 짠게맞지만 지금 양당은 단순히 정치인만 잘못돼있는게 아닙니다… 이대표님 철학과 신념은 타협할수있는게아닙니다 설득이되지않으면 결국 개썅마이웨이인거에요.. 바른정당때는 손학× 패거리와 이념의 모호화때문에 실패했다쳐도 유승민이 아닌 이준석이이끄는 신당은 전 다를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대표는 세력을 정착시킬수있는 본진이있어야해요
명문입니다 지지합니다
가짜뉴스, 언론개혁, 검찰개혁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과거사와 역사왜곡은 어떻게 할 것인지…?pc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결국 저것들이 필연적으로 나올 것인데. 건드릴 수 없는 건 아닌지?
+친일세력에 대해서는?